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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4장 경대부장 - 출중한 교양인을 위해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4장 경대부장 - 출중한 교양인을 위해

건방진방랑자 2023. 4. 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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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대부장(卿大夫章) 제사(第四)

 

 

출중한 교양인을 위해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선왕의 법복(法服)고대문명의 틀을 짠 선왕들이 법도에 따라 정한 복식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 하고, 선왕의 법언(法言)선왕들이 예법에 따라 정한 이상적 언어, 그 의미 내용과 말씨. 고대제식에 수반되는 언어로서 격식화되어 있었다. 에서는 덕음(德音).’ 에서는 합어(合語).’ 고대문명에 질서를 부여한 고등한 언어, 교양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 하고, 선왕의 덕행(德行)법행(法行)’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선왕들의 덕을 구현한 행동. 이상적 삶의 실천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아니 한다. 그러므로 선왕의 법()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 하고, 선왕의 도()가 아니면 행하지 아니 한다.
子曰: “非先王之法服弗敢服, 非先王之法言弗敢道, 非先王之德行弗敢行. 是故非法弗言, 非道弗行;
 
입에는 버리거나 택하거나 할 말이 없고, 몸에는 버리거나 택하거나 할 행동이 없다. 그러므로 그의 말이 천하에 퍼져도 입놀림의 과실이 없고, 그의 행동이 천하에 퍼져도 원망이나 증오가 없다.
口無擇言, 身無擇行. 言滿天下亡口過, 行滿天下亡怨惡.
 
법복(法服), 법언(法言), 덕행(德行), 이 삼자(三者)가 구비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녹위(祿位: 작록과 지위)를 보전할 수 있고 그 종묘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을 소위 경대부의 효라고 하는 것이다. 시경대아(大雅) 증민(蒸民)노래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을 충심으로 섬기도다.’”
三者備矣, 然後能保其祿位, 而守其宗廟. 蓋卿大夫之孝也. : ‘夙夜匪懈, 以事一人.’”

 

효경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장 중의 하나이다. 총론에서 밝힌 지덕(至德)ㆍ요도(要道)가 이 경대부장에서 법복(法服)ㆍ법언(法言)ㆍ덕행(德行)이라는 세 개념으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복ㆍ법언이라 하면 우리는 언뜻 불교의 용례를 생각하기 쉬우나, 불교의 한역과정에서 이 효경』」의 언어들이 격의(格義)의 틀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교에서 법()다르마(dharma)’를 의미하지만, 다르마가 함의하는 모든 신성한 의미를 선진문명에서 이미 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었다. 그것은 불타의 교법(敎法)ㆍ규범(規範)ㆍ법칙(法則)이 아닌 선왕의 교법이요, 규범이요, 법칙이었다.

 

일반독자들은 선왕(先王)’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중국고전에서 선왕은 매우 특수한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 중국문명, 아니 인간세의 법칙의 모든 기초를 놓은 문명창조자들(Culture-bringers, Culture-creators, Cultural Heroes, 이상은 희랍문명의 개념)이며 유대교에 비유하면 패트리아크스(Patriarchs)에 해당된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에 이르는 족장들이 중국민족들에게는 선왕(先王)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족장들로부터 내려오는 율법전승을 집대성한 것이 모세율법 즉 토라(Torah)라는 것이다. ‘토라가르침(, instruction, teaching)라는 뜻이다. 토라로부터 미쉬나(Mishnah)가 발전하고, 미쉬나로부터 탈무드(Talmud)가 발전하여 유대인의 삶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듯이, 여기 법복’ ‘법언’ ‘덕행이라는 개념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지 신화적ㆍ종교적 희생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적ㆍ문화적 질서가 중심이 되고 있을 뿐이다.

 

예기문왕세자(文王世子)편의 문장을 한번 살펴보자!

 

 

세자나 일반 선비를 가르치는 데는 반드시 때에 맞추어 커리큐럼을 짠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은 일반 선비의 경우, 봄에는 시()를 음영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금슬로써 그 시를 연주한다. 이러한 음악교육은 고종(瞽宗)장님들이 교수인 학교로서 고대 주요교육기관에서 태사들이 가르친다. 가을에는 의례를 행하는 것을 배우는데, 실제로 집례하는 사람들이 가르친다. 겨울에는 삼대로부터 내려오는 관공문서들을 실제로 관공문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직접 가르친다. 그러니까 예()는 고종(瞽宗)에서 배우고, ()는 상상(上庠)에서 배운다실제로 시ㆍ서ㆍ예ㆍ악의 커리큐럼이 사계절로 다 짜여져 있는 셈이다.

春誦夏弦, 大師詔之瞽宗. 秋學禮, 執禮者詔之. 冬讀書, 典書者詔之. 禮在瞽宗, 書在上庠.

 

대저 제사를 지내는 것과 양로걸언(養老乞言)노인의 현자를 모셔다가 지혜의 말씀을 청하는 것과 합어(合語)향사례(鄕射禮)ㆍ향음주례(鄕飮酒禮)ㆍ대사례(大射禮)ㆍ연사례(燕射禮) 등의 연회가 끝날 즈음 술을 주고 받으면서 선왕의 법에 관하여 그 의미를 상고하면서 진지하게 토론하는 예식의 예()는 모두 소악정(小樂正)이 동서(東序: 교육기관 이름)에서 가르친다. 대악정(大樂正)은 방패와 도끼로 추는 춤과 어설(語說)각종 세미나에서 행하는 연설과 명걸언(乞言)대체로 양로걸언과 비슷한 의미을 가르친다. 이 삼자(간척ㆍ어설ㆍ걸언)는 모두 대악정이 책의 편수(篇數)를 지시하면, 그에 따라 대사성(大司成)사씨(師氏)계열의 교육담당 관리이 동서(東序)에서 논설(論說)강의하고, 또 강의에 대하여 시험을 본다 한다.

凡祭與養老乞言, 合語之禮, 小樂正詔之於東序. 大樂正學舞干戚, 語說, 命乞言, 皆大樂正授數, 大司成論說在東序.

 

 

지금 여기에 나오는 걸언(乞言)’ ‘합어(合語)’ ‘어설(語說)’ ‘논설(論說)’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효경』」에서 말하는 선왕의 법언(法言)’의 실례들인 것이다. 고대의 예식이 우리가 종묘에서 보듯이 격식화된 의례와 음악만 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례(射禮: 활쏘는 예식), 향음주례(鄕飮酒禮: 술 마시는 예식) 등 일반 파티에서는 반드시 언어의 제전세미나의 향연즉 심포지움(Symposium)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줄리어스 시저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BC 43)와 같은 로마의 영웅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멋드러진,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웅변을 연상하는데, 이러한 풍속은 동ㆍ서가 차이가 없었다. 우리가 너무 동방문화의 원류에 무지할 뿐이다.

 

언어를 통하여 인간을 교육시키는 것은, 비록 상류사회에 국한되었다 해도, 주나라 인문교육제도의 기본이었다. 입에서 버리거나 선택하거나, 지지고 볶거나 할 건덕지가 없는[口無擇言] 출중한 교양인을 만드는 교육이 철저하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천박한 싸구려 말들이 입가[]에 맴돌아 이토록 나라의 풍기를 문란하게 만든 사례를 뼈저리게 체험한 한국인들은, 여기 경대부장의 메시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대부장에서 유독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천자 - 제후 - 경대부 - 서인하이어라키(hierarchy, 계층)에서 경대부가 가장 막강한 실권자이며 실제로 인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공자가 일생을 통해 추구했던 것도 경대부 자리였고 공자가 그토록 저주했던 계씨(季氏)도 경대부였다. 이들이야말로 법복ㆍ법언ㆍ덕행을 가장 정밀하게 실천해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본시 경()이란 대부(大夫)보다 높은 지위로서 군정(軍政)을 집장(執掌)하는 대신이었다. 그러니까 제후 밑의 행정수반이었다. 그리고 대부는 상대부(上大夫)ㆍ중대부(中大夫)ㆍ하대부(下大夫)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이나 대부나 모두 식읍(食邑)이라는 봉토를 받는다는 것이다. 일정의 봉토를 자신의 통치지역으로서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봉토가 없이 샐러리에만 의존하는 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사는 자유로운 유랑인이었고, 경과 대부는 땅에 얽매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 경대부라는 개념이 합칭되고 있는 것은 이미 공자의 시대에도 경과 대부의 뚜렷한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도 참월(僭越)을 하여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면 군주의 권력을 능가했다. 옹렬한 주석가들이 경대부를 나누어 주석해야 한다고 하나, 효경이 쓰여진 전국말에는 경대부는 하나의 통합된 개념이었다.

 

경대부의 행동이야말로 천하에 펼쳐져도 천하사람들에게 원망이나 증오가 없어야 하고, 오늘날의 정치ㆍ관료ㆍ법조인들의 언어가 천하에 펼쳐져도 입의 범죄[口過]’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효라고 말하는 효경』」의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통렬한 법언(法言)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하여 이다지도 이 세상이 법언을 상실케 되었는가? 효가 곧바로 우리의 구업(口業)과 관련된다는 이 장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명심하기를 바란다.

 

마지막 시 증민의 인용은 대체적으로 본장의 의미맥락과 잘 맞아떨어지므로 단장취의라 볼 수 없다. 중산보(仲山甫)가 주나라 선왕(宣王)의 경대부였는데 선왕을 보좌하여 중흥의 치세를 이룩한 공신이었다. 그의 일상적 덕성을 찬양하는 구절이다. 여기 일인(一人)’이란 천자를 의미한다. 경대부는 제후 밑에도 있고, 천자에 직속된 경대부도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맥락상 천자에 직속된 경대부를 일컫는 것이나, 의미론적으로는 어느 상황에도 다 들어맞을 수 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행정관료들(특히 실제 사무를 장악하는 국장들), 그리고 검찰, 판사님들! 법언(法言)과 덕행(德行)을 꼭 기억하시오. 법언과 덕행의 실천이 바로 그대들의 효()라오.

 

여기 예기양로걸언(養老乞言)’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파티장이나 사교모임, 어디를 가든지, 또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라는 청탁을 꼭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양로걸언의 고례가 우리나라에 살아남은 실증이다. 옛 음주례에는 반드시 양로걸언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로(養老)’의 효도라고 하는 것은 훌륭한 걸언(乞言)’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늙어가면서 젊은이들에게 법언(法言)이나 합어(合語)를 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노인이라야 진정한 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더럽게 늙고, 완고하게 고집만 피우고, 골은 텡텡 비어가면서 젊은이들의 효심만을 강요하는 보수쓰레기가 되지 말자!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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