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회복적 사회의 지름길을 만드는 교사 | |
시너지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발생하는 법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효과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미칠 효과를 굳게 믿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행위에서 생성되는 문화를 생각할 때, 바람직한 인식구조는 호스피스 봉사자라든가 새 생명을 위한 산파의 역할을 요구합니다.
진화론적 대변화가 일어난 모든 시대마다 이 두 가지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조안나 메이시
회복적 생활교육을 학교 현장에 실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고 동력인 건 바로 교사다. 교사의 변화는 교육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핵심적인 과제다. 교사의 성장은 튼튼한 나무 한 그루의 성장과도 같은데, 아무리 튼튼한 나무라도 거친 태풍에는 꺾기고 부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튼튼한 나무 한 그루도 소중하지만 숲을 이루어야 바람과 태풍을 이겨내 풍성한 생태계를 유지ㆍ보호할 수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듯 개개인의 교사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교육적 시스템의 변화와 사회 공동체의 협력도 중요한 것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
교사는 평화적 의사소통과 공감 능력, 갈등의 평화적 문제 해결 역량, 평화 감수성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배움은 교사의 정직한 삶을 통해 가장 잘 일어난다. 교사가 곧 ‘평화’가 되었을 때에야 애쓰지 않아도 평화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삶과 배움의 공간에 흘러가게 된다. 교사가 공감을 가르치려고 할 때보다 공감으로 살아갈 때 배움이 일어난다. 그래서 교사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교사도 권위적인 문화 속에서 배우고 자라왔기 때문에, 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과 내적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을 필요가 있다. 최근 교과부의 ‘학교 폭력 유공 교원 승진 가산제’ 발표로 인해 현장의 많은 교사들로부터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교과부는 교사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여전히 외적 포상이나 징계를 사용한다. 그러나 교사를 상벌로 통제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교사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의무적인 교직원 연수를 늘리는 추세다. 하지만, 이런 연수 또한 교사의 학교 현실에 대한 공감 없이 이루어져서, 오히려 교사의 피로도만 높여 저항을 불러오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교사의 내적 동기를 높여주는 방식의 교사 지원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교사의 필요를 반영한 연수 제공뿐 아니라, 참여 방식이나 결정 과정에서 교사 자발성을 존중하는 것이 도움 된다. 진정으로 교사의 공감 능력과 평화적 갈등 해결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교직 문화 속에서 경험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감적이고 평화적인 교직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둘째,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 확보
안타까우면서도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바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간 의 만남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가 되는 것이 학생과의 만남 시간인데, 교사는 수업 시간과 행정 업무 시간을 제외하면 학생과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시간에 대한 압박은 회복적 생활교육 실천을 애초부터 시도하기 어렵게 한다. 교육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현재 학교는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기다려주지 않는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가장 먼저 시행했던 고양의 ㄷ중학교의 경우, 시간 확보를 위해 수업 시간 활용을 허용하는 공동체의 동의가 있었다. 교육에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성장과 배움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현재의 학교 교육 구조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셋째, 공동체의 동의와 교육 과정 구축
그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공동체의 이해 부족은 진행 과정에 어려움을 준다. 주변 동료 교사나 관리자로부터 오해를 사거나 압박도 다가온다. 기존의 생활지도 방식을 지속하려는 주변 동료 교사와 새로운 대안적 생활교육 방식을 시도하려는 교사 간의 갈등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학교 시스템의 충돌도 새로운 생활교육의 도전을 불가능하게 한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공동체의 이해와 합의, 그리고 협력이 중요하다. 학교 공동체가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회복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교 공동체가 갈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 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자원과 시간, 공간 확보를 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넷째,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직 문화
평화로운 학교 문화를 위해 가장 먼저 변화가 필요한 것이 교직 문화다. 교사가 처한 교직 문화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고 소통이 되지 않는 위계적ㆍ권위적인 구조이다. 지시 전달식의 교무회의는 교사 공동체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교사가 교직 구조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학생과 나누기란 어려운 일이다. 교사들이 먼저 힘을 공정하게 나누고 합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교직 문화가 바뀌면 학생들은 그런 교사 문화를 보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다섯째, 경쟁과 효율성보다는 협력과 상호 존중에 기반한 교육 구조
학생들 간의 경쟁은 배움을 왜곡시키고 배움의 기쁨을 앗아간다. 교육은 경쟁이 아닌, 협력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 효율성이 언제부터인가 교육의 핵심 가치 기준이 되어 왔다. ‘결과를 위해 무엇이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또는 ’과정이 교육적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협력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학생들에게 경쟁의 가치가 아닌 공동체가 함께 공존하기 위한 협력의 힘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경쟁 중심의 교육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여섯째, 지역 사회와의 연결과 협력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 세계는 독립적이고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체계적 시스템으로 존재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들어와서 물리학은 몇 가지 개념적 혁명을 겪었으며, 그 개념적 혁명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유기적, 생태적 세계관으로 유도되는 이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이제 무수한 분리된 객체로 구성된 기계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분할할 수 없는 전체인 것이다. 그것은 역동적인 관계의 그물이며, 그 그물 속에는 관찰하는 인간의 의식까지도 근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프리초프 카프라, 구윤서ㆍ이성범 옮김,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범양사, 2007, 62쪽.】
전체로서의 각 부분들이 늘 상호 관계를 유지하고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 모든 기능, 모든 에너지 교환에 있어 상호 작용으로 종속되어 있다.
-게세코 폰 뤼프케, 박병화 옮김, 『두려움 없는 미래』, 프로네시스, 2010, 189쪽.
학교와 지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의 삶은 가정과 학교, 지역 사회와의 역동적 관계의 그물 속에 있다. 온전한 교육은, 학교가 가정과 지역 사회와 연대할 때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지역 사회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양시 ㄷ중학교의 경우, 지역 사회의 많은 인적ㆍ물적 자원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서 학생들의 교육에 협력적 관계를 맺고 있다. 교내의 학부모 교육이 활성화되어 있고, 학부모들은 카페 운영을 통해 학생의 안전한 먹거리와 돌봄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또한 학부모들이 회복적 서클의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대학생 멘토링이나 방과 후 교육이 지역 자원 봉사와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학교는 학부모를 포함하여 지역의 인적 자원과 단체를 교육 공동체의 협력자로 세우고. 지역의 문화적ㆍ공간적 자원들과 연결하고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호스피스의 역할과 산파 역할 |
회복적 생활교육은 우리에게 교육에 대한 다른 차원의 이해와 접근을 요구한다. 그래서 단순히 기술적인 변화만을 말하지 않으며, 한 개인 의 변화뿐 아니라 교육의 구조적 변화도 함께 요구한다. 그래서 한 개인이 실천하기에는 힘겨운 과제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 우리의 학교 현장은 낡은 것도 작동하지 않지만, 새로운 것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들은 한편으로는 조안나 메이시가 지적한 것과 같이 변혁의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생태철학자인 조안나 메이시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변혁의 시기에는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위기를 맞은 낡은 옛 것을 떼어내는 과정이며, 세 번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그 사이의 국면, 즉 ‘이행의 시간’은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이런 한계 영역에서는 낡은 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새것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어느 것도 작동되지 않는 불확실성의 국면이며 통제 불능의 국면이다. 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낡은 세계상과 정체성이 해소되어 버리는 국면이기도 하다.”【- 게세코 폰 뤼프케, 박병화 옮김, 『두려움 없는 미래』, 프로네시스, 2010, 182쪽】
지금 우리는 교육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저항과 붕괴 직전에 와 있다. 바로 이러한 변혁의 흐름에 새로운 대안으로 회복적 생활교육이 등장하고 있는 이때, 교사는 이 긴장과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역시나 조안나 메이시에게 그 답을 얻는다면 “낡은 것에 대해서는 호스피스 봉사자 역할을,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산파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슬픔과 불안, 그리고 고통이 동반하는 긴장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 교사가 중심을 잡고 견녀내기를 제안한다.
낡은 것에 대해 호스피스 역할, 새로운 것에 대해 산파 역할이란 무엇일까? 호스피스 봉사자는 생명이 다한 사람과 함께 애도하는 마음으로 죽음에 동참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사 연수를 다니면서 다양한 선생님들의 반응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은 교사들이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새로운 시선에 대해 호기심과 기대를 갖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은 자신의 교직 생활과 생활지도에 대한 비난으로 여기면서 저항하고 분노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어떤 교사 연수 자리에서 “이제껏 내가 잘못 살았다는 말이요? 때려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주어서 고맙다며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는데, 그럼 그건 뭐란 말이요!”라고 흥분된 반응을 보이신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교직에서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신 모든 교사들의 노력과 진정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많은 학생들은 교사들의 이러한 헌신과 사랑으로 많은 성장과 배움을 이루어왔다. 우리는 자칫 새로 운 것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치 과거의 것이 모두 잘못됐다 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것에 대해 함께 손을 잡고 울며 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용기를 서로에게 북돋아주어야 한다. 교사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교육적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 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성찰과 반성을 함께 끌어안는 자세가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산파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변혁의 시기에 새로운 대안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과 저항에 함께해야 한다. 산모의 고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과 같이,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전환하자. 옛것도 작동되지 않고 새것도 작동되지 않는 이 고통의 간극에서 교사는 어떻게 호스피스 역할과 산파의 역 할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파커 파머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네 가지 내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전략,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지원 혼자서도 당당하게 길을 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그것이다.【파커 파머, 윤규상 옮김,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해토. 2007, 227쪽.】 이러한 파머의 말에 비추어 회복적 실천가로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내적 토대는 다음과 같다.
우선, 모든 영혼을 존중하는 태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 존재에 대한 감사, 영혼의 존중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또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조차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빛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그 내면의 빛에 집중한다면. 옳고 그름이 나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를 넘어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비난과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서, 평화와 사랑의 길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둘째,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고, 결과를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교사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려는 의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고. 이를 위한 진실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단의 다양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다양성은 우리가 미처 알 지 못했을 수 있는 관점을 추가해 줄 뿐 아니라 집단 의사결정의 파괴적인 특성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제임스 서로위키, 홍대윤ㆍ이창근 옮김. 『대중의 지혜』, 랜덤하우스중앙, 2005, 62쪽.
세 번씩, 지지하는 공감 그룹을 만든다.
실패와 성공,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지지 그룹이 있을 때, 지치지 않고 먼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했던 많은 선생님들의 고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기적으로 만나서 성공과 실패담을 나눌 수 있었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답했다. 희망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는 고난 속에서도 견딜 힘을 주고, 회복적 실천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내면의 힘을 기른다.
지지해주고 공감해줄 공동체가 있으면 좋지만, 함께할 공동체가 없을 때는 혼자서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회복적 실천가였던 현장 선생님들의 경험담 속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사례 중 하나는, 시간이 갈수록 내면이 단단해졌고 단단해진 내면은 주변 상황을 이겨낼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복적 실천을 어렵게 하는 주변 상황이 변한 것은 없지만, 내면의 힘은 주변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자신을 평화와 존중의 자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교사의 내면의 평화와 내면의 단단함은 주변 상황을 오히려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된다. 개인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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