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식에 눈뜨다②
반란의 계기는 사소한 데서 터져 나왔다. 바로 총기 소제용 헝겊이 문제였다. 병사들은 이것을 대개 입으로 물고 적당히 찢어내 총기를 닦았는데, 이 헝겊에 칠해진 기름이 쇠기름과 돼지기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는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동물이고,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가뜩이나 영국이 카스트의 관습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세포이들은 영국이 자신들을 모독하려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더구나 영국군 장교들은 그런 소문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그 헝겊을 사용하라고 강요했다. 때마침 영국이 인도를 아예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돌았다(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종교는 단지 신앙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다).
1857년 5월, 참다못한 벵골의 세포이들이 먼저 무장 폭동을 일으켰다. 봉기는 순식간에 벵골에서 오우드의 러크나우와 칸푸르 등지로 퍼졌으며, 이내 전국적인 반영운동으로 이어졌다. 세포이들은 그때까지 명맥이 붙어 있던 무굴 제국의 황제를 내세우고 제국의 부활을 선언했다. 그러나 상징에 불과한 무굴 황제가 세력 결집의 실제 우두머리가 될 수는 없었다. 반란이 일어난 후 1년간 세포이들은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제법 세력을 떨쳤으나 그 뒤부터는 지리멸렬한 끝에 진압되고 말았다.
세포이의 반란으로 인해 인도에서는 두 가지가 사라졌다. 먼저 그동안 과소평가해온 인도인의 민족의식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보게 된 영국은 인도인의 상징적 중심인 무굴 제국을 없애버렸다.
이로써 무굴 제국은 영국의 진출 이후 100년 간 굴욕에 찬 명맥을 유지하다가 마침내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또한 동인도회사가 사라졌다. 벵골을 장악한 이후 동인도회사는 영국 정부의 명령과 간섭을 받으면서도 인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의회는 더 이상 회사 체제로 식민지를 지배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동인도회사를 해체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동인도회사가 사라졌으니 이제 인도는 총독 정도로 통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내각에 인도 담당 장관을 두고, 인도에 총독이 아닌 부왕(副王)을 파견하게 되었다. 부왕이 있다면 그 상급의 왕, 즉 황제도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굴까? 바로 영국 국왕이다. 그리하여 1876년 영국 여왕 빅토리아(Victoria, 1819~1901)는 인도 황제를 겸하게 되었으며, 인도는 인도 제국으로 격상되었다(왕국이 제국을 거느린 격이지만 중세 신성 로마 제국과 여러 왕국의 관계에서 보듯이 원래 서양의 역사에서는 제국과 왕국이 수직적 질서를 맺지 않는다). 제국에 걸맞게 영국은 인도에 대해 유화정책으로 돌아서 인도의 관습과 전통적인 제도, 종교 등을 존중하고 인도인에게 차별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포이의 반란으로 싹튼 민족의식의 불씨는 괴뢰 제국을 세운다고 해서, 혹은 유화책으로 조금 더 나은 대우를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영국군의 대량 학살과 잔혹 행위는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씻을 수 없는 증오의 씨앗을 남겼다.
▲ 초대 부왕 세포이의 반란을 계기로 영국은 그간 말썽이 많았던 동인도회사를 없애고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총독 대신 부왕이 파견되었는데, 사진은 초대 부왕으로 임명된 캐닝(Charles Canning)이다. 그러나 부왕은 직책에 불과할 뿐 실제로 인도를 다스린 것은 여전히 총독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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