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전주한옥마을이 던진 메시지
9시부터 이튿날 강의가 시작된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잤지만, 7시 30분에 일어나니 그렇게 몸이 무겁진 않았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였다면 몸도 무겁고 마음도 심란했을 텐데, 참석하고 싶어 참석하는 강의이니만치 몸이 먼저 그걸 아는 듯했다. 아침밥을 챙겨먹고 모든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8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 남천교에서 찍은 전주천의 아침 풍경. 이렇게 이른 아침에 여길 거닐다니, 참 재밌다.
관광지가 아닌 삶의 공간
집에서 한옥마을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지금은 벽화마을로 유명한 ‘자만마을’이란 곳이 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이 그곳에 있었는데, 모든 산동네들이 그렇듯 서민들의 터전이었다. 거기서부터 중앙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걸어서 다녔었다. 그땐 초등학교가 경기전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경복궁엔 조선총독부가, 남산엔 조선신궁이, 경기전엔 국민학교가 들어섰던 것이다. 일본의 조선 지우기는 그렇게 각 지방에서 체계적이면서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어렸던 나는 그걸 알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저 자만마을에서 유치원에 가기 위해 한옥마을을 지나다녔으니, 한옥마을은 그저 서민들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었을 뿐이다.
▲ 경복궁에 건설된 조선총독부. 문민정부에 들어서 철거 작업을 했다. 아쉬움이라면 이 건물을 살리는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던 공간이 고작 몇 년 사이에 매우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주말엔 사람이 넘쳐나고 길거리마다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변모했다. 보통 극단적인 변화를 얘기할 때, ‘뽕나무밭이 푸른바다로 변했다桑田碧海’와 같이 형태가 변한 것만을 이야기하는데, 이 경우 형태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인식이 급속도로 바뀐 경우라 할 수 있다. 한옥마을은 같은 한옥마을이지만, 그 땐 ‘가난한 서민들이 살던 곳’이라는 인식이,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라는 인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게 인식이 바뀔 수 있었던 데엔 어떤 영향(매스컴?, 지방정부의 노력?, 어떤 다른 작용?)들이 작용했는지 궁금하다. 웃긴 것은 전주에 있을 때만 해도 한옥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다녔던 곳이라 너무도 익숙한 곳이라 생각했고, 언제든 맘만 먹으면 둘러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같은 공간, 다른 이미지의 공간이 되었다. (출처-뉴스 토마토)
한옥마을이 건빵에게 던진 메시지
그러다 서울에 자리를 잡고 전주를 떠나고 나서야 한옥마을의 묘미를 알게 되었다.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다른 모습, 다른 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왔기에 너무 익숙하며, 그래서 잘 안다고 자부했던 것이 그저 나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그럴 것이다’는 짐작에 불과할 뿐, 정말로 알고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재학교 아이들과 함께 한옥마을을 돌아다니고, 오목대에 올라보니 그제야 놓치고 있던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었고, 너무도 몰랐다는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럴 때 더 이상 궁금해 하지도, 알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옥마을은 ‘안다는 착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아?’라는 메시지를 던져준 곳이라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너무도 익숙한 공간이 던져준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그 때 이후로 살아왔으며, 그건 ‘교실밖 교사 커뮤니티’에 참가할 수 있는 계기도 됐다.
자신이 살아온 결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8시 50분에 향교문화관에 도착했다. 쌤들이 모두 다 앉아 있는데 나만 늦게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직 오시지 않은 쌤들도 있더라. 나중에 말을 듣고 보니 어제 막걸리를 마시고 숙소에 돌아와서 2차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새벽 4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니, 그때서야 주무신 쌤들은 비몽사몽일 것이고, 그러니 늦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한결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강의를 들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받아 아침의 싱그러운 기운을 받으며 마시고 있으니, 왠지 모를 행복감이 찾아온다. 만약 이런 식의 여유로움을 누릴 수만 있다면, 일상은 지옥이 되기보다 천국이 될 것이다.
오늘은 오전에 여러 명의 쌤들이 ‘교육을 바꾸는 15분’이란 강연만 하면 수련회 일정이 끝난다. 1박2일의 일정 중 어찌 보면 가장 임팩트 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15분은 짧다면 매우 짧은 시간인데, 그 시간 안에 자신이 살아온 결을 얼마나 잘 녹여내어 전달하느냐에 따라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올라왔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9시에 시작하기로 했지만, 모이는데 시간이 걸려 9시 30분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 아침의 한옥마을은 고요한 느낌이었다. 간혹 산책하는 커플이 보일 뿐 고즈넉한 느낌이 좋았다.
인용
'연재 > 배움과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7. 교육에 대한 고민들: 강상희쌤, 최성욱쌤편 (0) | 2019.10.22 |
---|---|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6. 교육에 대한 고민들: 섬쌤, 동글이쌤, 오동선쌤편 (0) | 2019.10.22 |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4. 다양한 교육적 고민들이 어우러졌던 교컴 뒷풀이 (0) | 2019.10.22 |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3. 너무도 이론적이어서 아쉬웠던 교컴 토론회 (0) | 2019.10.22 |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12. 저녁식사와 자기소개 시간 (0) | 2019.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