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무도 이론적이어서 아쉬웠던 교컴 토론회
소개를 모두 끝나고 나니 9시가 넘었다. 깊이 있게 토론을 하기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그럴 수는 없었다. 토론시간은 함영기쌤이 진행하셨는데, 한 번에 여러 주제를 던져주고 그 주제 중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1분 동안 자유롭게 발언을 하면 됐다.
▲ 토론을 하기 위해 책상 배열을 바꾸고 있다.
주제를 듣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
이 때 던져준 주제는 ‘시민성과 국민성은 어떻게 다른가?’, ‘교사의 인권과 학생의 인권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 자체는 관료적 체제인데, 교실에선 민주적인 문화를 꽃피우려 한다. 이걸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시민성 교육을 하려 할 때 교사의 역할은? 시민성교육이 잘 되었을 땐 어떤 결과가 나오나?’라는 거였다.
솔직히 토론 주제를 듣는 순간, 너무 이론적인 주제들이라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고민해본 적 없는 분야이기에 주제를 듣긴 했지만, 낚아챌만한 언어꾸러미가 하나도 없어 모두 흘려듣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런 주제를 듣고 생각이 샘솟기보다 모든 생각이 고갈된 양 사고의 작동이 멈춰버렸다. 그러니 꿀 먹은 벙어리인 양 그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말잔치, 하지만 그걸로 끝!
그런데 이런 이론적인 주제들은 말이 말을 낳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때 만들어진 수많은 얘기들은 삶을 바꾸거나, 혜안을 주거나, 시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는다.
2011년에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토론회에 간 적이 있다. 4명의 패널이 앞에 앉아 던져주는 주제에 자신들의 말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그걸 들으면 들을수록 ‘아는 것도 많고 생각도 많지만 말만 가득한 자리다’라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현실에 발 딛지 않은 고상한 언어가 좌중을 훑고 지나가지만, 어떠한 교감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나 스스로가 아는 게 별로 없었기에 교감할 건덕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때의 토론도 그랬다. 수많은 말이 나왔지만, 그 때의 이야기들은 그저 이상 속의 언어처럼 차갑고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높이 나는 새도 먹이는 땅에서 얻는다”라는 속담이 그 순간 생각났던 것 같다. 이론이 현실에 녹아들지 못하면 공상이 되고, 현실이 이론에 뒤섞이지 못하면 일상이 된다.
▲ 함영기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인성교육에 대해 시민성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
또한 현재 인성교육이 대두되다 보니, 유행처럼 여기저기 인성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교컴에서도 그런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흐름에 그대로 파묻히기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싶어 ‘인성교육을 넘어 시민성 교육으로’라는 주제를 정하고 오늘과 같은 수련회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인성을 국가가 강요할 때 그걸 시민성으로 맞서는 것은, 판을 흔든다기보다 오히려 굳히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이를 테면 유신론有神論을 제기하는 사람에게 무신론無神論을 말하는 것,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에게 ‘나는 왜 빨갱이가 아닌지?’를 말하는 것과 같은 한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신론을 말하려다 보면 ‘신은 존재한다’는 전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신은 없다’는 논지를 펼쳐야 하며, ‘나는 왜 빨갱이가 아닌지?’에 대해 말하려면 ‘빨갱이는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오히려 전제만 더욱 부각되는 역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규정한 판에 들어가 그 판을 흔들려 하는 건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보다 아예 다른 판을 만들던지, 새롭게 단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쓰지만, 녹색당이 쓸 땐 ‘핵 없는 세상’으로 현실화되지만, MB가 쓸 땐 ‘사대강 사업’으로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같은 단어지만 누가 쓰고 누가 현실화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180도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린 ‘시민성 교육’이란 새로운 주제를 만들기보다 ‘인성교육’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는 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토론시간은 10시 20분까지 아주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거의 끝날 시간이 되었음에도 마지막까지 발언을 하고자 하는 쌤들이 4명(준규쌤도 그 중 한 명)이 더 있었다. 하지만 함영기쌤은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거기서 끊으며 “아쉬운 것들은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아쉬움을 나누면 더 뜨거운 시간이 될 것이에요”라며 마무리 지었다.
▲ 빛이 부서지는 고즈넉한 밤거리를 거닌다. 여긴 나를 위한 무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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