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초상집에서의 공자 모습
7-9. 공자께서 초상 치르는 사람 곁에서 식사를 하실 때에는 배불리 드시는 적이 없었다. 공자께서 이 날에 곡(哭)을 하시면 그 자리를 뜬 후에도 노래를 부르시는 법이 없었다. 7-9.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子於是日哭, 則不歌. |
아주 사소한, 별 의미없는 장 같이 느낄 수도 있겠으나 공자라는 인간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파편이다. 4복음서에 바로 이러한 식의 인간 예수의 기술이 없기 때문에 그 의도가 순결하지 못한 것이다. 불트만의 말대로 이미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케리그마를 정당화 시키기 위한 필터가 깔려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술이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논어』는 인간 공자를 말한다. 이 장은 실제로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하나로 융합시켜서 그 느낌을 강화시켰다.
‘상자(喪者)’라는 것은 초상을 치르는 사람들이다. 즉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뜬 슬픔을 당한 사람들이다. 황간의 소에 의하면, 공자는 상례의 전문가였고 장례를 돕는 일을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장례식을 도와주다 보면 반드시 상주와 같이 밥을 먹게 된다. 이때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는 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의 감정의 조화를 배려하는 것이다.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은 타인의 슬픔을 망각하고 내 배만 채우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 곡을 하면 집에 와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공자 자신의 내면의 감정의 일관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편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공자는 항시 집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추측할 수가 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그 많은 『시경』의 가사들을 암송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항시 집에서 노래를 불렀던 째즈 아티스트였다. 노래는 잘 부르고 못 부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 노래가 얼마나 일상화 되어 있고 내면화 되어있나에 따라 우리 귀에 순하기도 하고 불순하기도 한 것이다.
상사에 임할 때에는 슬퍼져서 입맛이 달 수가 없는 것이다.
臨喪哀, 不能甘也.
‘곡(哭)’은 조곡(弔哭)을 일컫는다. 상사가 있는 그날 하루 안에는 남은 슬픔이 가시지 않아서 저절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哭, 謂弔哭. 日之內, 餘哀未忘, 自不能歌也.
사현도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들은 이 두 가지 사태에서 성인의 정성(情性: 감정)의 바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 능히 성인의 정성을 바르게 인식한 연후에나 그의 철학[道]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謝氏曰: “學者於此二者, 可見聖人情性之正也. 能識聖人之情性, 然後可以學道.”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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