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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10. 안연을 칭찬한 공자, 그런 안연을 질투한 자로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10. 안연을 칭찬한 공자, 그런 안연을 질투한 자로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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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안연을 칭찬한 공자, 그런 안연을 질투한 자로

 

 

7-10. 공자께서 안연을 앞에 두고 말씀하시었다: “세상이 기용하면 정확히 행동하고 세상이 버리면 조용히 숨어지낼 수 있는 미덕을 지닌 자, 오직 너와 나밖에는 없겠지.”
7-10.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옆에 있던 자로가 질투가 나서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세 군단의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야 하신다면 누굴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으려 하고 큰 강을 맨몸으로 건너려 하면서 죽어도 후회없다고 외치는 그런 놈하고 난 같이 가지 않아. 일에 임하면 두려워할 줄 알고, 뭔 일이든 꼼꼼히 생각해서 꼭 성공시키는 사람, 난 반드시 그런 사람과 같이 갈 거야.”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 자로는 질투가 나서 이런 상황이라면 반드시 안연보다는 나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공자에게 진퇴양난의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런데 된통 야단만 맞고 말았다. 당시 1군이 12,500명이라 했으니 요즈음으로 말하면 사단 규모이나, 당시 감각을 살려 그냥 삼군(三軍)’세 군단으로 번역하였다.

 

 

()’는 상성이다. ‘는 부()라고 발음한다. 윤언명이 말하였다: “세상이 기용하거나 버리거나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와 무관한 것이요, 정확히 행동하거나 조용히 숨어 지내는 것은 당한 처지에 편안히 처신하는 것이니, 여기 운명이니 하 는 것은 왈가왈부할 건덕지도 없다(주자어류34 참조). 안자는 거의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 上聲. , 音扶. 尹氏曰: “用舍無與於己, 行藏安於所遇, 命不足道也. 顔子幾於聖人, 故亦能之.”

 

 

송유들이 안자를 너무 높였다.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라는 테제 때문에 그것의 현실태의 한 예증으로서 안자를 아성(亞聖)으로 쳐받든 것이다. 물론 아성이라는 이름은 이미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현종(唐玄宗)이 개원(開元) 8(720)에 그를 아성(亞聖)’으로 봉()하고 십철의 으뜸[十哲之首]으로서 그의 신주를 받들었다. 그리고 27(739)에 그를 다시 연공()으로 가봉()하였다. 그러나 이 고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안자와 자로에 대 하여 인격의 등급을 매길 수는 없다. 맛이 다른 인간형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12,500명을 1군이라 하는데 대국(大國)3군을 두었다. 자로는 공자께서 안연만 유독 찬미하시는 것을 보고 자기의 무용(武勇)을 한번 과시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의중에는 부자께서 만약 3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신다면 반드시 자기와 더불어 하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萬二千五百人爲軍, 大國三軍. 子路見孔子獨美顔淵, 自負其勇, 意夫子若行三軍, 必與己同.

 

은 피빙(皮冰) 반이다. ‘()’는 거성이다. 포호(暴虎)’는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는 것이다. ‘빙하(馮河)’는 배 없이 맨몸으로 큰물을 건너는 것이다. ‘()’는 일을 공경히 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란 그 도모한 바를 반드시 성공시키는 것을 일컫는다. 이런 것들을 말씀하신 것은 모두 자로의 용맹을 억제시켜서 그를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실로 군사를 통솔하는 요점은 이외로 딴 것이 없으니, 이런 것은 자로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 皮冰反. , 去聲. 暴虎, 徒搏. 馮河, 徒涉. , 謂敬其事. , 謂成其謀. 言此皆以抑其勇而敎之, 然行師之要實不外此, 子路蓋不知也.

 

사량좌가 말하였다: “성인께서 세상에 나가 의로운 행동을 하거나 숨어 조용히 지내는 일에는 어떠한 의도성도 없고 또 반드시 어떻게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것도 없다. 등용되어 나가 행하는 것도 직위를 탐해서가 아니요, 버려지면 숨어사는 것도 홀로 잘났다고 하는 짓도 아니다. 만약 욕심투성이라고 한다면 등용해주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설치고 다니며 자리나 기웃거릴 것이고, 버려져도 조용히 숨어있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안자만이 이러한 경지에 더불어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로는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쓸 데없는 고집과 꼭 무엇인가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집념이 없지 않았다. 삼군을 거느리고 나간다면 운운하는 질문에 이르게 되면 그 논의가 더욱 비열해지고 마는 것이다. 부자께서 대답하신 말씀이야말로 자로의 허점을 파악하여 그를 구제하려는 것이다. 잘 생각하여 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요, 두려움 없이 나대기만 하면 반드시 패망한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3군을 통솔하여 전장에 임하는 데 있어서랴!”

謝氏曰: “聖人於行藏之間, 無意無必. 其行非貪位, 其藏非獨善也. 若有欲心, 則不用而求行, 舍之而不藏矣, 是以惟顔子爲可以與於此. 子路雖非有欲心者, 然未能無固必也, 至以行三軍爲問, 則其論益卑矣. 夫子之言, 蓋因其失而救之. 夫不謀無成, 不懼必敗, 小事尙然, 而況於行三軍乎?”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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