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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8. 배움의 자세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술이 제칠 - 8. 배움의 자세

건방진방랑자 2021. 6. 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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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배움의 자세

 

 

7-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분발치 아니 하는 학생을 계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의심이 축적되어 고민하는 학생이 아니면 촉발시켜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한 꼭지 들어 말해주어 세 꼭지로써 반추할 줄 모르면 더 반복치 않고 기다릴 뿐.”
7-8.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공자의 교육방법은 참으로 위대하다. 공자가 엘리티즘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아니 된다. 인간의 자발성, 촉발성, 분발성을 깊게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자는 지식을 통째로 전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선생의 역할은 학생이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촉발하는 산파역에 그칠 뿐이라고 겸허한 자세를 유지할 뿐이다. 공자는 참으로 구체적 교육방법론을 갖춘 훌륭한 스승이었다. 7과 일관된 주제가 여기서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은 방분(房粉) 반이다. ‘는 방비(芳匪) 반이다. ‘는 부우(扶又) 반이다. ()’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통달하기를 구하나 미처 도달치 못해 애쓰는 마음의 상태이다. ‘()’는 그 뜻을 열어주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입으로는 말하고자 하나 명료하게 언표할 수 없어 애태우는 모습이다. ‘()’은 그 언어[]를 통달시켜 주는 것이다. 사물에 네 귀퉁이가 있을 때, 한 귀퉁이만 튕겨주어도 나머지 세 귀퉁이는 알아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라고 하는 것은 되돌아보아 서로 인증한다는 뜻이다. ‘()’는 다시 말해주는 것이다. 윗 장에서 이미 성인은 회인불권(誨人不)’한다는 것을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기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병기해놓음으로써, 배우는 자로 하여금 힘써 공부하는 데 부지런히 하여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케 하고자 하심이라.

, 房粉反. , 芳匪反. , 扶又反. 憤者, 心求通而未得之意. , 謂開其意. 悱者, 口欲言而未能之貌. , 謂達其辭. 物之有四隅者, 擧一可知其三. 反者, 還以相證之義. , 再告也. 上章已言聖人誨人不倦之意, 因幷記此, 欲學者勉於用力, 以爲受敎之地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분비(憤悱)’라는 것은 인간의 성의(誠意)가 안색과 말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 성의가 지극함에 이르는 것을 기다려 말해주는 것이며, 일단 말해주었으면 또한 반드시 스스로 깨닫는 것을 기다려서 다시 말해줄 뿐이다.”

程子曰: “憤悱, 誠意之見於色辭者也. 待其誠至而後告之. 旣告之, 又必待其自得, 乃復告爾.”

 

또 정명도(程明道)가 말하였다: “분비(憤悱)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촉발시켜 주면 그 앎이 견고할 수가 없다. 반드시 분비하는 것을 기다려 촉발시켜 줄 때에 비로소 감동과 함께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又曰: “不待憤悱而發, 則知之不能堅固; 待其憤悱而後發, 則沛然矣.”

 

 

동방의 학문은 자각의 길이요, 자득의 길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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