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후천적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
8-11.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주공의 자질을 타고난 아름다운 인간이라 할지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도 없다” 8-11.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
‘주공의 자질[周公之才]’이라는 것은 공자로서 한 인간에 대하여 찬미할 수 있는 극도의 표현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을 공자 당대에 공자 스스로 썼을까, 도무지 의문이 간다. 역시 공자이든, 주공이든, 관념화되어버린 후대의 언사임이 분명하다. 그 뜻인즉, ‘주공지재(周公之才)’라는 것은 인간이 타고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천적 재질이다. 인간에게는 타고나는 선천적 조건이라는 것이 분명히 있다. 잘생긴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키가 큰 사람도 있고, 피부가 고운 사람도 있고 … 뿐만 아니라, 고대광실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서향이 가득한 만권지서(萬卷之書)의 선비집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그 러나 이렇게 타고나는 조건은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 후천적 노력이 보장이 안 된다면 모두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아무리 잘난 인물도 몇 년만 엉터리로 살면 추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요, 고대광실도 초라한 하꼬방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상전벽해의 세상사는 걷잡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여기 공자말로서 인용되고 있는 이 로기온의 내용은 인간의 내면적 덕성에 관한 것이다. ‘교만’은 타인에 대한 무시이며,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만을 내포하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말 뿐이다. 이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대체로 ‘교만’의 덕성을 부정적 가치로 내세운다. 니체의 초인의 덕성도 결코 교만은 아닐 것이다.
인색[吝]이란 물질적 인색과 정신적 인색을 동시에 의미한다. 물질적 인색이란 베풀 줄 모르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타인들과 나누어 가질 줄을 모르는 것이다. 정신적 인색이란 자기가 소유한 내면적 덕성이나 지식을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엉큼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의를 내보이는 데 인색할 뿐 아니라 타인의 훌륭함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한다. 인색한 자들은 인격이 결국 오그라들고 만다. 늙어갈수록 쪼그라져서 단단해지고 만다. 세상 에 추한 것이 완고한 늙은이이다.
‘주공지재(周公之才)’에다가 ‘지미(之美)’를 덧붙여 ‘지(之)’를 중복시킨 것은 어기(語氣)를 강조하는 용법이다. 앞의 ‘여(如)’도 가정, 뒤의 ‘사(使)’도 가정, ‘여(如)’보다 ‘사(使)’가 더 강한 가정이다. 가정의 톤이 강화된다. 그리고 나서 ‘그 나머지는 …(其餘 …)’하고 흘러가는 문의(文義)는 상당히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나는 우리말의 간결한 흐름을 존중하여 번역에 가정의 뜻을 강하게 내비치지 않았다. 레게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
The Master said: ‘Though a man have abilities as admirable as those of the Duke of Zhou, yet if he be proud and niggardly, those other things are really not worth being looked at.’
참 아름다운 번역이다.
‘재미(才美)’는 지능(智能)과 기예(技藝)의 아름다움이다. ‘교(驕)’는 자만하여 으스대는 것이요, ‘린(吝)’은 비루하고 인색한 것이다.
才美, 謂智能技藝之美. 驕, 矜夸. 吝, 鄙嗇也.
○ 정이천이 말하였다: “이 말씀은 교만과 인색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대저 주공의 덕이 있다면 교만과 인색이 있을 턱이 없다. 만약 주공의 재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따위 인간에게서 뭘 볼 게 있겠는가.”
○ 程子曰: “此甚言驕吝之不可也. 蓋有周公之德, 則自無驕吝; 若但有周公之才而驕吝焉, 亦不足觀矣.”
정이천이 또 말하였다: “교만은 기가 차서 넘치는 것이요, 인색은 기가 부족하여 쪼그라든 것이다.”
又曰: “驕, 氣盈. 吝, 氣歉.”
나 주희가 생각한다. 교만과 인색은 이 천의 말대로 넘치고 모자라는 차이가 있으나 이 둘은 실상 그 형세가 항상 서로 의존하고 있다. 대저 교만이라는 것은 인색의 지엽이요, 인색은 교만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치를 천하의 사람들에게 실험적으로 조사해보면, 교만한 놈치고 인색하지 않은 놈이 없고, 인색한 놈치고 교만하지 않은 놈이 없다.
愚謂驕吝雖有盈歉之殊, 然其勢常相因. 蓋驕者吝之枝葉, 吝者驕之本根. 故嘗驗之天下之人, 未有驕而不吝, 吝而不驕者也.
희의 말이 명언이다.
인용
'고전 > 논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13. 나라에 도가 있을 땐 가난한 게, 도가 없을 땐 부귀한 게 부끄럽다 (0) | 2021.06.26 |
---|---|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12. 배움에 뜻을 둔다는 것 (0) | 2021.06.26 |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10. 난리를 일으키는 두 부류의 사람 (0) | 2021.06.26 |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9. 유교의 우민화정책인가 합리적 방법인가 (0) | 2021.06.26 |
논어한글역주, 태백 제팔 - 8. 시와 예와 악으로 보는 배움의 과정 (0) | 202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