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 사건과 기상새설 사건
먼저 상갓집 해프닝, 연암이 십강자(十扛子)에 이르러 쉬는 사이에 정진사, 변계함 등과 함께 거리를 거닐다가 한 패루(牌樓)에 이르렀다. 그 제도를 상세히 구경하려 할 즈음에 요란스런 음악이 시작된다. 정과 변, 두 사람은 엉겁결에 귀를 막고 도망치고, 연암 역시 귀가 먹을 것 같아서 손을 흔들어 소리를 멈추라 하여도 영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다만 할끔할끔 돌아보기만 하고 그냥 불고 두드리고 한다. 호기심이 동한 연암은 상갓집 제도가 보고 싶어 따라가니, 문 안에서 한 상주가 뛰어나와 연암 앞에 와 울며 대막대를 내던지고 두 번 절하는데, 엎드릴 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일어설 땐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그러고는 “창졸에 변을 당했사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사옵니다[].” 하고, 수없이 울부짖는다. 상주 뒤에 5, 6명이 따라 나와 연암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얼떨결에 문상객이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상주를 위로하고, 음식까지 대접받고 나온다. 돌아와 일행들에게 고하니, 모두들 허리를 잡는다[余爲言俄刻吊喪之禮 皆大笑].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 ‘기상새설(欺霜賽雪)’ 사건, 심양의 시가지를 거닐 때, 한 점포 문설주에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네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연암은 마음속으로 ‘장사치들이 자기네들의 애초에 지닌 마음씨가 깨끗하기는 가을 서릿발 같고, 또한 흰 눈빛보다도 더 밝음을 스스로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做個賣買的 自衒其本分心地皎潔 與秋霜一般 乃復壓過他白白的雪色]’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전당포에서 필법을 자랑하기 위해 액자로 다는 현판에 ‘欺霜賽雪’ 네 자를 썼는데, 처음 두 자를 쓸 땐 환호하다가 막상 다 쓰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토라지는 연암. “하긴, 이런 작은 촌동네에서 장사나 하는 녀석이 심양 사람들 안목을 어찌 따라가겠냐? 무식하고 멍청한 놈이 글자가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겠어[小去處做賣買的 惡能及瀋陽諸人 這個麤莽漢 那知書字好否]?”하고, 투덜거리며 가게를 나온다.
다음날 달빛이 훤한 밤에 한 점방에 들어간다. 탁자 위에 남은 종이가 있기에 남은 먹을 진하게 묻혀 ‘신추경상(新秋慶賞)’이라 써 갈겼다. 그중 한 사람이 보고 뭇사람들을 소리쳐 부른다. 연암이 쓴 글씨를 보더니 차를 내온다, 담배를 붙여 권한다, 분주하기 짝이 없다. 으쓱해진 연암은 주련(柱聯)을 만들어 칠언시 두 수를 써준다. 와아~ 사람들의 환성소리, 술에 과일대접까지 받은 연암은 갑자기 생각하기를 ‘어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 넉 자를 썼다가 주인이 돌연 안색이 나빠졌단 말이야. 오늘은 단연코 그 치욕을 씻어야겠다[昨日當舖所書欺霜賽雪四字 舖主怎地不悅 吾當爲前日雪耻也]’하고는 점포에 다는 액자로 ‘기상새설’을 써준다. 그러자 주인이 “저희 집에선 부인네들 장식품을 매매하옵고 국숫집은 아니옵니다[俺舖專一收賣婦人的首飾 不是麪家].” 한다. 아뿔사!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국숫집 간판이었던 것이다. 그 의미도 심지가 밝고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국숫가루가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뜻이었던 것. 비로소 실수를 깨달았지만, 연암은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말한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시험삼아 한번 써본 것이오[我已知道了 聊試閒筆耳].”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사건은 잘 짜여진 한 편의 꽁트다. 시간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을뿐더러, 그 사이에 연암의 심리적 상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토라졌다 다시 으쓱대고, 속으로 뜨끔하고, 하지만 또 응큼하게 치고 등등. 자신의 심리변화를 이렇게 세밀하게 재현하는 사람의 심리는 대체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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