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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2장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전족에 대한 시선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2장 시선의 전복 봉상스의 해체, 전족에 대한 시선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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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에 대한 시선

 

 

한족 여인들의 전족(纏足)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족이란 여성들이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발을 꼭꼭 싸매는 습속이다. 예쁘고 작은 발이야말로 가장 성적인 표징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금병매(金甁梅)를 보면, 여주인공 반금련의 걸음걸이를 연보(蓮步), 즉 연꽃 같은 발걸음에 비유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런 맥락이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그걸 위해선 아주 어릴 때부터 두 발을 조일대로 조여 성장을 멈추게 해야 했으니, 이 습속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전족의 거부를 핵심 강령의 하나로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이 철저히 한족의 습속이라는 점이다.

 

열하일기에 따르면, 지배집단인 만주족은 극구 금했으나 한족 여인들은 만주족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법령을 어기면서까지 전족을 고집하고 있었다. 만주족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자, 한족 남성들이 자신들은 만주족의 변발을 수용하는 대신, 여성들에게는 전족을 고수하도록 함으로써 서로 역할분담을 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통치전략과는 다른 종류의 권력, 곧 습속이 하나의 억압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한족이 통치할 때도 하위주체에 불과했던 여성에게 이미 망해버린 왕조의 전통을 사수하는 역사적 사명이 주어지다니.

 

어처구니없어 보이겠지만, 억압의 기호가 졸지에 저항의 징표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우리 시대에도 적지 않다. 이슬람권 여성들의 부르카(얼굴을 가리는 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여성억압의 대표적 습속임에도,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그것이 이슬람 문화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슬람 여성들은 벗을 수도 없고, 뒤집어 쓸 수도 없는이중적 질곡에 빠지고 말았다. 한족 여성과 전족의 관계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무튼 당시 중국의 정치적 배치상, 한족들의 입장에선 전족이란 마땅히 고수해야 할 전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연암이 보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낡은 관습일 따름이다.

 

 

한족 여인네들의 활굽정이처럼 생긴 신은 차마 눈뜨고 못 보겠더군요. 뒤뚱거리며 땅을 밟고 가는 꼴이 마치 보리씨를 뿌리는 듯 왼쪽으로 기우뚱 오른쪽으로 기우뚱, 바람도 하나 없는데 저절로 쓰러지곤 하니 참, 그게 뭔 짓인지 모르겠습디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漢女彎鞋 不忍見矣 以跟踏地 行如種麥 左搖右斜 不風而靡 是何貌樣

 

 

이처럼 어떤 유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때, 사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유일무이한 시점을 고집하는 한, 사물의 다양성과 이질성은 함몰되고 만다. 그가 보기에 초월적인 법칙은 없다. 가령, 사람들은 백로를 보고서 까마귀를 비웃지만, 까마귀의 검은 깃털도 해가 비치면 혹은 비취빛으로 혹은 석록빛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도 까마귀를 검은 빛에 가뒀을 뿐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다시금 까마귀를 가지고서 천하의 온갖 빛깔에다 가두어놓고서 공연히 화를 내고 미워한다. 그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배치에 따라 유동하고 변화하는 차이들일 뿐이다.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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