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오랑캐다!
조선이 청문명을 거부하는 이유는 청이 북방의 유목민이고, 그들의 문화는 오랑캐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역시 동이, 곧 동쪽 오랑캐다. 차이가 있다면, 농경민이라는 것뿐이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타자화하는 것, 이것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내막인 셈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조선은 비록 종족적으로는 오랑캐지만, 정신은 더할 나위없이 순수한 중화라는 것이다. 더구나 중화문명의 수호자인 한족이 멸망했으니, 이제 문명은 중원땅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중화의 지리적, 종족적 실체가 사라진 마당에 이제 헤게모니는 누가 더 중화주의를 순수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조선 후기 들어 주자학이 도그마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자학이란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완성된 유학의 한 분파다. 주희는 당시까지의 유학적 흐름을 집대성하는 한편 견고한 체계화를 꾀했다. ‘성(性)’과 ‘리(理)’란 개념이 그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성리학’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왕조는 16세기 이래 주자학을 정통으로 표방하였고, 이후 조선에선 다른 종류의 해석은 발붙일 길이 없게 되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중화의 순결성을 오롯이 담보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맞물리면서 주자학적 체계가 유일무이한 이념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원래 추종세력이 원조보다 한술 더 뜨는 법. 주자학의 본향인 중국보다 조선의 선비들이 더 과격한 주자주의 혹은 중화문명의 수호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연암은 이 소중화(小中華) 주의의 심층을 교묘하게 교란시킨다. 일단 그는 자신이 오랑캐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다. 중화주의라는 ‘대타자’의 눈으로 청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변방 오랑캐의 눈으로 거대제국을 이룬 유목민 오랑캐를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일단 이것만으로도 어리석은 분별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심세편(審勢編)」에서 연암은 우리나라 선비들의 다섯 가지 허망함을 논한다. 그중 하나는 지벌(地閥)로서 뽐내는 것이다. 중국이 비록 변하여 오랑캐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천자의 칭호는 고쳐지지 않은 만큼, 그들 각부의 대신들은 곧 천자의 공경인 동시에 반드시 옛날이라 해서 더 높다든지, 또는 지금이라고 해서 더 깎이었다든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신들은 그들의 조정에서 절하고 습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피하기만을 일삼아 드디어 하나의 규례가 되고 말았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문자를 안 뒤로부터 중국의 것을 빌려 읽지 않는 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역대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치고 ‘꿈속의 꿈’을 점침이 아닌 것이 없음에도 이에 억지로 운치(韻致)없는 시문을 쓰면서, 별안간 ‘중국에는 문장이 없더구먼’하고 헐뜯는다.
더욱 어이없는 건 한족 출신 선비들을 만나면 “질문에 급급해서 대뜸 요즘 정세에 대해 말하거나 스스로 자기 의관을 자랑함으로써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는지 어떤지를 살핀다. 어떤 경우엔 단도직입적으로 명나라를 잊지 않았느냐고 물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것이다. 이러니 대체 어떻게 소통이 되겠는가? 그래서 연암은 중국 선비들과 대화하는 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그들의 환심을 사려면 반드시 대국의 명성과 교화를 찬양하여 먼저 그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또 중국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어 그들의 의구심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러는 한편, 예악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고상한 취향에 맞춰주어야 하며 틈틈이 역대의 사적을 높이 띄워주되, 최근의 일은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말하자면 뜻을 공손히 하여 배우기를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이야기할 기회를 주라, 그런 다음에 웃고 지껄이다 보면 그 속내를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교묘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결코 얄팍한 속임수에 빠지지는 않는 팽팽한 줄타기수법, 사실 이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화니 오랑캐니 하는 관념의 끼풀을 벗어던지기만 해도 세상이 훤히 보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연암은 때때로 차라리 어떤 ‘트릭’도 쓰지 않고 태평한 어조로 말하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 심양에 들렀을 때, 멀리 요양성 밖을 둘러보며 그는 생각한다. 이곳은 옛 영웅들이 수없이 싸우던 터구나. 천하의 안위는 늘 이 요양의 넓은 들에 달렸으니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의 풍진이 잦아들고, 이곳이 한번 시끄러워지면 천하의 싸움북이 소란히 울린다. 그런데 이제 천하가 백 년 동안이나 아무 일이 없음은 어쩐 일인가. 이 심양은 본디 청이 일어난 터전이어서 동으로 영고탑과 맞물리고, 북으로 열하를 끌어당기고, 남으론 조선을 어루만지며, 서로는 향하는 곳마다 감히 까딱하지 못하니, 그 근본을 튼튼히 다짐이 역대에 비하여 훨씬 낫기 때문일 것이다.
험준한 요새 고북구를 지날 때도 비슷한 감회를 토로한다. 전쟁터였던 이곳에 삼과 뽕나무가 빽빽이 서 있으며 개와 닭 울음이 멀리까지 들리니, 이같이 풍족한 기운이야말로 한당(漢唐) 이후로는 보지 못한 일이 아닌가. 대체 청왕조는 무슨 덕화(德化)를 베풀었기에 이런 태평천하가 가능하단 말인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런 자문자답은 이후에도 계속 변주된다.
지금 청나라가 세상을 다스린 지 겨우 4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통치자들은 모두 문무를 겸비하고 장수를 누렸다. 지난 백년은 태평스런 시대로서 천하가 두루 편안하고 조용했다. 이런 상황은 한ㆍ당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중략)
今淸之御宇纔四世, 而莫不文武壽考, 昇平百年, 四海寧謐, 此漢唐之所無也. (中略)
사람이 처한 위치에 따라 본다면, 중화와 오랑캐는 명확히 다르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은나라의 우관이든 주나라의 면류관이든 다 나름의 때를 따라 마련된 것일 뿐이다. 유독 청나라 사람의 홍모(紅帽)에 대해서만 꼭 의심을 던질 이유가 없다. 「호질후지(虎叱後識)」
故自人所處而視之 則華夏夷狄, 誠有分焉. 自天所命而視之, 則殷冔周冕, 各從時制, 何必獨疑於淸人之紅帽哉?
역대 성인들의 말씀은 모두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기준으로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은나라와 주나라, 청나라 사이에 대체 무슨 차별이 있단 말인가?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는 것은 오직 인간들의 편협한 척도의 소산일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오랑캐 아닌 족속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고정된 심급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에 의해, 외부와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일 터. 그러므로 오랑캐의 눈으로 오랑캐를 본다는 건 더 이상 중화와 이적의 위계적 표상 내부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오랑캐다. 아니, 오랑캐든 아니든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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