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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헤게모니(Hegemony)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헤게모니(Hegemony)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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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

Hegemony

 

 

지난 20세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것은 사회주의다. 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으나 세기 말에 사회주의권은 일제히 붕괴했다. 한때 전 세계 식민지ㆍ종속국들을 흥분과 기대감에 떨게 했던 사회주의가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이렇듯 허망하게 몰락한 이유는 뭘까?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낡은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이 충분히 성숙해야만 새로운 사회 질서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곧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진 것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거스른 탓일까?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미 1930년대에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견했는데, 마르크스처럼 혁명의 경제적인 조건만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혁명 이전 시기 차르 체제의 러시아에는 없었고 당시 서유럽 국가들에는 있었던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시민사회 (civil society). 용어는 익숙하지만 시민이라는 계급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는 사실 시민사회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연설에서 흔히 말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서양에서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한다. ‘시민의 사전적 정의는 도시 거주자를 뜻하지만 서양의 역사와 문화에서는 일반 국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17세기 영국, 18세기 프랑스가 잘 보여주듯이 서유럽 국가들은 시민계급, 즉 부르주아지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그런데 20세기 초까지 차르 체제의 제국적 질서가 잔존했던 러시아에는 시민계급이 부재했다이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는 중국이나 북한도 마찬가지다, 시민계급과 시민혁명의 생략은 사회주의 혁명을 거친 국가들이 사회주의를 계속 발전시키는 데 치명적인 결함이다.

 

 

시민사회의 대립물은 국가. 국가는 지배하고 시민사회는 국가를 견제한다. 서유럽의 근대사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 갈등과 타협 속에서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전개된 역사다. 그런데 시민사회의 전통이 없는 러시아에서는 국가의 전제적 지배가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사회주의 혁명도 아래로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사회혁명이 아니라 위로부터 인위적으로 연출된 정치혁명이라는 형태를 취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서유럽 세계에는 시민사회가 있었기에 국가의 지배도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국가는 결국 붕괴하고 만다. 이런 시민사회의 역할에서 그람시는 헤게모니의 개념을 끌어낸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도구다. 그러나 시민사회라는 감시 장치가 있는 이상 물리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국가는 한층 세련된 지배 방식을 구사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헤게모니라고 말한다. 헤게모니는 패권(覇權), 지배(支配)라는 뜻이지만 물리력이나 강제력에 의한 지배와는 다르다. 헤게모니는 피지배자의 동의나 합의에 기반을 두는 지배이며, 그람시에 따르면 문화적ㆍ도덕적 지배의 측면을 포함한다.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 겉으로는 언뜻 온건한 방식인 듯 보이지만 실은 원시적이고 난폭한 지배로는 피지배계급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게모니가 채택된 것이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피지배계급과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이룬다. 그러나 그들의 참된 목적은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현실을 당연시하게 만들어 지배구조를 영속화하려는 데 있다.

 

지배계급이 이렇게 세련된 지배 방식을 취한다면 그 지배에서 해방되려는 혁명도 과거처럼 조악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구사하는 헤게모니의 방식을 혁명 세력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염두에 둔 혁명은 러시아 혁명처럼 단기간에 모든 것을 뒤엎고 권력을 탈취하는 과정이 아니라 완만하고 장기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혁명을 유격전(遊擊戰)이 아닌 진지전(陣地戰)이라고 말한다.

 

단기전이나 유격전이라면 물리력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지만 장기전이나 진지전에서 승리하려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대응할 수 있는 대항 헤게모니를 갖추어야 한다. 그 목적은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혁명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서와 마찬가지로 혁명세력의 헤게모니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 대중 교육이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한 장면. 귀한 물을 조금씩 나눠줌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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