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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북벌(北伐) 프로젝트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 3장 “문명은 기왓조각과 똥거름에 있다”, 북벌(北伐) 프로젝트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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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北伐) 프로젝트

 

 

물론 이런 정도로 중화사상이 골수에 박힌 자들이 설복당할 리가 없다. 연암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강경한 전략을 구사한다. 먼저 표적을 북벌론(北伐論)으로 잡았다.

 

잘 알고 있듯이 소중화(小中華)주의는 북벌론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조선이 작은 중화라면, 마땅히 청나라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북벌론의 요지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인조는 북벌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운다. 복수에 눈이 먼 인조와 그 추종자들에게 청과 조선의 역학 관계 따위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청문명의 역동적 기류에 눈뜬 소현세자가 조선에 돌아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소현세자를 이어 그 아우인 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북벌은 이제 부동의 국가적 소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현실적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신성불가침의 이념으로 떠받들어지게 되었다. 18세기 연암 당시에 이르면 이제 아무런 내용도 없이 그저 껍데기뿐인 채로, 주로 반대파를 공격할 때 활용되는 도그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암은 이 북벌론(北伐論) 내부 깊숙이 잠입하는 수법을 쓰기로 한다. 즉 자신을 북벌론을 강경하게 고수하는 위치에 놓고서 북벌론자들에게 제안을 하는 식이 그것이다. 정 그렇다면 좋다. 그렇게 북벌이 소원이라면, 한번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보자. 반대편의 명분을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이런 테크닉 역시, 패러독스의 일종이다. 허생전(許生傳)이 바로 그 과격하고 대담무쌍한 전투가 벌어지는 필드.

 

변부자에게 십만 냥을 빌려 온나라 경제를 뒤흔들고, 또 무인도에서 자신의 이상을 한바탕 실험해본 뒤, 허생은 다시 옛날 집으로 돌아간다. 아내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변부자의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유유하게 살아가던 중, 하루는 변부자가 이완대장을 그에게 데리고 온다. 이완은 당시 북벌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는 허생에게 천하를 평정할 방도를 묻는다.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허생이 마침내 입을 연다.

 

그가 이완에게 들려준 북벌 프로젝트는 이렇다. “무릇 천하에 대의를 외치고자 한다면 우선 천하의 호걸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고, 다른 나라를 정벌하고자 한다면 먼저 첩자를 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법[夫欲聲大義於天下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 未之有也,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 未有能成者也]”이다. 전쟁을 하려면 적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아닌가. 그러려면 당연히 스파이를 침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준다. “나라 안의 자제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히고, 선비들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평민들은 멀리 강남 땅으로 장사를 하러 가서 그들의 모든 허실을 엿보면서 그곳 호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지. 그런 후에야 모쪼록 천하의 일을 도모할 만하고 나라의 치욕을 씻을 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네[朝鮮率先他國而服, 彼所信也.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 如唐元故事, 商賈出入不禁, 彼必喜其見親而許之. 妙選國中之子弟, 薙髮胡服, 其君子往赴賓擧, 其小人遠商江南, 覘其虛實, 結其豪傑, 天下可圖而國恥可雪].” 정말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각계각층에 두루 침투하라는 것이다. 중앙정계뿐 아니라 상업의 허실을 간파하는 한편, 청에 불만을 품고 있는 호걸들을 조직하여 반란을 도모하게 한 다음 그때 쳐들어가야 삼전도의 수치를 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언뜻 과격한 북벌론(北伐論) 같지만 잘 살펴보면, 그 내부에는 북학론이 교묘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동태를 파악하는 것과 청문명의 핵심을 두루 마스터하는 것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과격한 북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으로선 공략하기가 난감하다. 어리숙한 이완은 이렇게 답한다.

 

 

사대부들이 모두 삼가 예법을 지키고 있는 마당에 누가 선뜻 머리를 깎고 되놈 옷을 입겠습니까?

士大夫皆謹守禮法, 誰肯薙髮胡服乎?”

 

 

이렇게 되면, 이미 싸움의 승패는 판가름났다. 이거야말로 허생이 유도한 답변 아닌가. 허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내지른다.

 

 

사대부라는 것들이 대체 뭐하는 놈들이더냐? ()ㆍ맥()의 땅에 태어나서 사대부로 자칭하니 어찌 미련한 게 아니더냐. 바지저고리는 순전히 하얗기만 하니 이는 상을 당한 사람의 복색이고, 머리털을 모아서 송곳처럼 찌르듯 맨 건 남쪽 오랑캐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다. 대체 뭐가 예법이라는 것이냐? (중략)

所謂士大夫, 是何等也? 產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中略)

 

지금 너희들은 대명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도 머리카락 하나를 아끼고 있다. 이제 장차 말 달리기, 칼치기, 창 찌르기, 활쏘기, 돌팔매 던지기 등을 해야 하는데도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예법이라고?

乃今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

 

 

예법에 얽매여 폼만 잡고 있으면서, 입만 열면 대명을 위해 원수를 갚겠노라고 떠들어대는 꼴이란! 상투 하나를 아끼는 주제에 목숨을 건 전투를 어찌 감당하겠다고, 쯧쯧, 이 변증이 보여주는바, 북벌론(北伐論)은 속이 텅 빈 망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북벌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작업도 실행된 적이 없다. 북벌은커녕 조선의 지배 엘리트는 청의 구체적 실상조차 접할 생각이 없다. ‘청이 일어난 지 140년이 되었건만,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을 오랑캐라고 하여 사신의 내왕은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문서의 거래라든지 사정의 허실은 일체 역관에게 맡겨둔 채, 강을 건너 연경에 이르는 2천리 사이에 각 주현의 관원과 관액의 장수들은 그 얼굴을 접해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원수에 대해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다니! 요컨대 북벌은 단지 명분으로만, 이데올로기로만 지탱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망상일수록 더더욱 견고해지는 것이 도그마들의 숙명이다. 연암은 그 숙명적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다. 내부 깊숙이 파고들어 그 몸통을 먹어치우는 수법을 통해.

 

하긴 곰곰이 따져보면 북벌의 망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크게 히트한 만화 남벌을 기억하는가? 일본을 정벌한다는 뜻을 지닌 남벌 역시 북벌의 20세기적 변주에 다름아니다. 그뿐인가. 틈만 나면 요동벌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공상역사소설들이 등장하여 북벌에 대한 꿈을 부추기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버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공허함과 맹목의 차원에선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런 까닭에 허생, 아니 연암의 패러독스는 여전히 비수처럼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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