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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 호락논쟁에 대한 관점 차이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 - 호락논쟁에 대한 관점 차이

건방진방랑자 2021. 7. 1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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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락논쟁에 대한 관점 차이

 

 

한편, 18세기 철학적 논쟁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인물성동이논쟁과 관련하여 볼 때, 천기론이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강조한 동론(同論)의 입장과 연결된다면, 다산의 상제관은 이론(異論)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인격신의 설정을 통해 이론(異論)보다도 훨씬 더 과격한 인간중심주의를 표방한다. 다산에 따르면 인성과 물성은 결단코 다른 것이어서, 물성은 사물의 자연적 법칙에 한정된다. 인간의 존재는 이 물질계의 어떠한 유()로부터도 초월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향유하는 주체이다. 인간이 이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영명(靈命)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영명은 기타 물질계와의 연속성이 부정된 독자적인 인식의 주체로서 작용한다.

 

자연의 모든 사물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목적론적 태도 역시 그러한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다.

 

 

! 우러러 하늘을 살펴보면 일월(日月)과 성신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구부려 땅을 살펴보면 초목과 금수가 정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는 사람을 비추고 사람을 따듯하게 하고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섬기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자가 사람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하늘이 세상을 하나의 집으로 만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고, 일월성신과 초목금수는 이 집을 위해 공급하고 받드는 자가 되게 하였는데…….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嗟呼 仰觀乎天 則日月星辰森然在彼 俯察乎地 則草木禽獸秩然在此 無非所以照人煖人養人事人者 主此世者 非人而誰 天以世爲家 令人行善 而日月星辰草木鳥獸 爲是家之供奉

 

 

이러한 관점은 연암의 인식론과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만큼 대척적이다. 주지하는 바대로, 연암은 인물막변(人物莫辨)’ —— 인성과 물성은 구별되지 않는다 —— 의 입장을 취한다. 나아가 만물진성설(萬物塵成說)’에 입각하여, 인간을 먼지에서 발생한 벌레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이런 구도하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주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매우 상이한 태도를 낳게 된다. 연암이 주체의 끊임없는 변이를 추구하는 탈주체화의 여정을 취하는 데 비해, 다산은 주체의 자명성, 확고부동함을 주창한다.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泡騰沫漲 印我顴顙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놓았네
一泡一我 一沫一吾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中略)  
斯須器淸 香歇光定 이윽고 그릇이 깨끗해지자 향기도 사라지고 빛도 스러져
百我千吾 了無聲影 백명의 나와 천 명의 나는 마침내 어디에도 자취가 없네
(中略)  
匪我映泡 以泡照泡 내가 거품에 비친 것이 아니요 거품이 거품에 비친 것이며
匪我映沫 以沫照沫 내가 방울에 비친 것이 아니라 방울 위에 방울이 비친 것일세
泡沫映滅 何歡何怛 포말은 적멸을 비춘 것이니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슬퍼하랴 주공탑명(麈公塔銘)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모두 지킬 것이 없고, 오직 나만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중략)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협과 재앙으로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심금을 울리는 고운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푸른 눈썹에 흰 이빨을 한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떠나간다. 한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나[] 같은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수오재기(守吾齋記)

大凡天下之物, 皆不足守, 而唯吾之宜守也. (中略) 獨所謂吾者, 其性善走, 出入無常. 雖密切親附, 若不能相背, 而須臾不察, 無所不適. 利祿誘之則往, 威禍怵之則往, 聽流商刻羽靡曼之聲則往, 見靑蛾皓齒妖豔之色則往. 往則不知反, 執之不能挽, 故天下之易失者, 莫如吾也. 顧不當縶之維之扃之鐍之以固守之邪?

 

 

앞의 글은 연암의 것이고, 뒤의 것은 다산의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이 두 텍스트는 주체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론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만하다. 연암의 경우, 인간뿐 아니라 이름 혹은 정체성이라는 고정점을 허망하기 짝이 없는 포말, 곧 물거품으로 보지만, 다산에게 있어 는 실과 끈, 빗장과 자물쇠로 굳게 지켜야 하는 견고한 성채에 비유된다. 주체의 자주지권(自主之權)’은 상제가 부여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포말과 성채! 주체에 대한 두 사람의 상이한 지향을 이보다 더 잘 말해주기란 어려우리라.

 

 

 

 

인용

목차

열하일기

문체반정

박지원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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