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는 선불교가 아니라 통불교이다
내가 한국불교계의 문제점에 관해서 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지만 이제 함구불언(緘口不言)하려 합니다. 내가 얘기하려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문벌싸움, 일종의 불교종파주의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계에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소개하고 싶었고, 우리나라의 불교전통이야말로 당ㆍ송의 불학을 뛰어넘는 우리민족의 고유한, 독자적인 삶과 가치와 느낌의 결정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죠.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신사적 활로라는 것을 이 조선땅의 미래세대들에게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 방편으로 내가 택한 불교의 진리체계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본서의 서론이 되겠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인 『반야심경(般若心經)』으로 직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선(禪)’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선사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 우선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선불교’(일본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Zen Buddhism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영역할 때 Seon Buddhism이라고 해야겠죠)라는 말자체가 알고 보면 매우 이상한 개념입니다. 불교면 그냥 불교이지, 선불교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선종’이라는 종파가 중국 당나라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실제로 선종의 본래면목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것은 조선불교일 뿐입니다. 중국에서는 송대 이후 불교다운 불교가 점점 인멸하여 지금은 그 진면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불교를 선종이라는 종파적 의식 속에서 바라보아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불교는 불교의 원래의 모습을 통째로 보전한 ‘통불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허 같은 사람이 고뇌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선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단지 불교가 가르쳐준 근본 진리를 통해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아주 보편적이고,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인간학의 과제상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이라는 것이 무슨 종파의 으뜸 원리 같은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종의 진리는 붓다의 언어적 가르침과는 별도로 전해내려온 진리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선종의 진리는 인간의 언어를 통해 파악되지 않는다. 문자를 세우지 마라), 직지인심(直指人心, 수많은 경전을 읽을 생각 말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라), 견성성불(見性成佛, 사람의 본래 성품을 보기만 하면[드러내기만 하면] 너는 곧 부처가 된다)의 4구를 기인(旗印)으로 내걸고, 조사들의 공안을 자신의 심지를 단련시키는 깨달음의 열쇠처럼 숭앙(崇仰)하고, 좌선(坐禪)에 몰두하는 집단을 우리가 ‘선종’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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