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종과 댜나의 음역 속에 겹친 속뜻
그리고 이 학파는 법의 본질(性, 성)을 다루지 않고 법이 드러나는 의식의 현상(相, 상)을 다루기 때문에 ‘법상종(法相宗)’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제 말이 다시 너무 학술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겉으로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요가행파’ ‘유식종’ ‘법상종’은 거의 같은 말이라고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법상종(유식종)에 의하여 아주 복잡한 불교 인식론이 만들어졌고, 선의 궁극적 의미도 이러한 인식론적 바탕을 이해해야만 확연하게 풀린다는 것만을 얘기해놓고 넘어가겠습니다. 단순히 선사들의 공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선(댜나), 삼매, 요가 등등은 본시 인도사람들의 생활습관 속에 배어 있는 수행방식일 뿐, 그것이 그러한 생활습관과 분리되어 있는 어떤 지고한 철학적 경지나 신비한 체험, 혹은 인간의 정신이 도달해야만 하는 어떤 실체적 코스모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선(禪)’이라는 낱말은 그것이 한역(漢譯)되는 과정에서 아주 묘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자아~ ‘선(禪)’은 분명 단순한 ‘댜나’의 음역이며, 음역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랑보(特朗普, telangpu)’라고 음역하는데 ‘특랑보’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못 갖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고로 음역과 의역을 겹쳐서 말을 만드는 취미가 있습니다. ‘미니스커트’라 말할 때 ‘미니(mini)’를 ‘迷你(mini)’라고 음역했는데 그것은 ‘너를 유혹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단순한 음역에 자체 단어의 의미를 겹치게 만든 것이죠.
‘선(禪)’은 단순한 음에서 나온 말이지만 중국사람들에게 그것은 본래적으로 매우 신성하고 거룩한 의미를 지니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봉선(封禪)’이라는, 오직 천자만이 지낼 수 있는 제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봉은 본시 신성한 산에 지내는 제사였고 선은 제단을 설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선’이라는 글자를 보면 보일 시[示] 자와 단(單)이라는 성부(聲符)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示)’는 하늘의 신령한 기운이 하강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단(單)’은 제단을 의미하는 ‘단(壇)’자와 통합니다. 이 태산 봉선제는 중국황제 중에서도 진시황, 한무제, 당고종, 당현종, 송진종 등 몇 명만이 거행할 수 있었던 지고의 대전(大典)이었습니다. 최초로 댜나를 번역한 사람이 어떠한 맥락에서 이 글자를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인들의 관념 속에서 ‘선(禪)’은 우주의 신령한 기운과 감응한다는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선(禪)’이라는 번역은 참으로 깡다귀 좋은 번역이지요. 그래서 선종이 신비로운 기운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특히 선종은 ‘의발전수(衣鉢傳授)’라고 하는 관념이 있어 사승관계의 족보를 엄격히 따지는 문벌의식을 강하게 표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따위 의발수수의 짓거리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죠. 불교를 편협한 종파주의로 휘모는 편협한 짓거리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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