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行)과 연기(緣起)의 의미
기실 일체개고와 제행무상은 한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제행이 무상하면 모든 것이 ‘고(苦)’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제행의 ‘행(行)’은 우리말로는 ‘간다’는 뜻이지만, 그 원어인 ‘삼스카라 (samskāra)’는 ‘드러난 것’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제행(諸行)’은 나의 인식 세계에 드러나는 모든 현상(phenomena)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 사건, 그 모든 것은 항상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찰나찰나 변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싯달타가 보리수 밑에서 제일 먼저 깨달은 진리는 ‘연기’라는 것인데 ‘연(緣)’이라는 것은 원인의 뜻이고, ‘기(起)’라는 것은 연으로 해서 ‘일어나는’ 결과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사물도 그것 자체로 단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변화가 오면 결과는 반드시 변하게 마련입니다.
나는 지금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이 현상(行, 행)은 그냥 단절적인 절대적인 사태가 아니라 반드시 ‘연(緣)’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배가 부른 것은 조금 전에 밥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밥을 계속해서 공급받지 못하면 곧 배가 고파집니다. 그러니까 모든 현상은 항상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찰나찰나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그 사랑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소스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변화를 일으키게 되면(사실 변화를 안 일으킬 수 없지요) 사랑이라는 사태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사랑이 식어버리는 것이죠. 항상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럼 갑돌이와 갑순이는 “사랑이란 무상(無常)하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원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사랑의 식음이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사랑은 고(苦)다” 그러니까 제행무상과 일체개고라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일체개고’라는 것은 불교를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공통된 인식의 출발점이었으며, 그것은 매우 유니크한 세계관(Weltanschauung)을 나타내는 독립된 명제이기도 합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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