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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9.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9.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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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다

 

 

물론 그 고요한 삶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수많은 동료 수학자들의 우정과 아내의 사랑, 그리고 빛나는 지적 성찰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내쉬 스스로의 노력이었다. 이례적으로 수학자에게 노벨경제학상이 돌아갔을 때, ‘정신병자에게 노벨상을 줄 수는 없다는 편견을 관철한 반대파도 존재했으며, 설사 그에게 노벨상을 준다 할지라도 그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과연 내쉬가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들도 있었다. 내쉬의 평전인 뷰티풀 마인드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로 각색될 때 명장면으로 꼽힌 만년필 세러모니’. 이 장면은 내쉬를 둘러싼 동료들의 우정을 형상화한 멋진 알레고리다. 존경하는 학자에게 자신이 늘 쓰는 만년필을 헌정하는 아름다운 세러모니. 그것은 실제 존 내쉬의 재능을 아끼고 그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아무리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려고 몸부림쳐도 끊임없이 미국 대학에 일자리를 주선하고 병원비를 모금해주었던 수많은 동료들의 우정과 기대를 압축한 상징적 장면이 아닐까.

 

실제로 노벨상 수상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내쉬가 그 화려한 월계관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전집조차 출간을 거부한 채, 과거의 성공을 뛰어넘는 미래의 저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집을 발간한다는 것은 곧 평생의 연구가 완료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기에, 자신의 마지막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였던 것이다. 내쉬는 자신의 최고의 작업이 20대에 이미 완성한 게임이론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는 나날 동안만들어질 미지의 작업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그의 병이 언제 다시 재발할지도 모르고, 그가 평생 게임이론을 뛰어넘는 연구를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노벨상을 받은 천재 수학자의 드라마틱한 삶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조용히 지속되는 학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정신분열증 환자와 의사들에게 희망의 상징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희망에 부응하는 달콤한 대답을 준비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노벨상이 발병 이전의 성과가 아니라 발병 이후, 병을 극복한 후 낸 성과였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과의사들을 향한 강연에서 내쉬는 이렇게 말한다.

 

 

비합리적이었다가 합리성을 회복한다는 것, 정상적인 삶을 회복한다는 것,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 그러나 그것은 그리 멋진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환자 중에 화가가 있다고 칩시다. 그는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칩시다. 그는 정상적으로 활동합니다. 그것이 진정 치료가 된 것입니까? 그게 정말 구원입니까? 나 또한 모범적인 회복 사례일 수가 없다고 봅니다. 내가 앞으로 훌륭한 연구를 해내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듯,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내가 좀 늙었기는 하지만.

-실비아 네이사, 뷰티풀 마인드, 707.

 

 

융은 무의식의 속삭임에 한껏 귀 기울이면서도 현실에 발 딛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승의 발판은 가족과 직업이었다. 의사 면허를 가지고 환자를 도와주어야 하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와 한 여자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가 내면세계의 목소리에 완전히 점령당하지 않을 수 있는, 소중한 일상의 무게중심이었다. 그러나 일상의 중심세속적 열망은 구분되어야 했다. 그는 무의식의 탐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감행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학문적 출세의 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융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자신의 숙명에 분노하기도 했고, 상식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에 걸친 마음 만지기끝에 무의식에 대한 어떤 믿음에 다다른다. 우리 안의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고. 그는 열정과 분노에 몸이 달아오르다가도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면 자기 안의 우주적인 고요가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세속적 열망을 되는 대로 다 추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때부터 만다라 그림을 연구하고 연금술신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아프리카 탐험까지 감행하여 개인의 무의식을 넘어 인류의 집단 무의식을 탐구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마다 가뿐하게 어린이 되기하는 내면의 통과의례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간이 곧 어린이임을, 어린이처럼 놀며 주사위를 던지고 체스를 두는 것이 바로 시간임을 깨닫는다. 그는 어린이의 놀이에 몸을 맡겨 아직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있었던 자신의 무한한 잠재성을 발견한다.

 

 

나는 고아, 혼자다. 그런데도 어디서나 발견된다. 나는 하나의 존재, 그러나 나 자신과 대립하는 존재다. 나는 젊은이인 동시에 노인이다. 나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물고기처럼 깊은 곳에서 끄집어 올려야만 하므로. 아니면 하얀 돌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므로. 숲과 산에서 나는 두루 쏘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도 죽지만 시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칼 융, 조성기 역, 기억, , 사상, 김영사, 2007, 408.

 

 

융은 프로이트라는 거대한 스승이자 아버지이자 동료를 잃음으로써 세상 전체가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린 듯한 뼈아픈 고독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과의 날카로운 조우를 통해, 말하자면 45년 이상의 학위도 수업도 스승도 교과서도 없는 처절한 독학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무의식을 스승으로 삼았다. 내쉬 또한 고통스러운 증상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통제되지 않는 영혼의 불수의근, 즉 무의식을 자신의 진정한 스승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끝내 살아남는 내 안의 스승, 내 안의 친구, 내 안의 연인이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성은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성은 러닝머신처럼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삶만을 살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의식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으며 살아가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 사랑에 빠질 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될 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때, 영혼의 마지막 기름까지 쥐어짜내어 감동적인 연애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사람의 신변에 생길 위협을 미리 감지할 때, 왠지 이곳에서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이사를 할 때, 우리는 무한리필되는 무의식의 연료를 자신도 모르게 마음껏 활용한다. 우리의 영혼은 저마다 아직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노래 가사이며, 아직 지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시이며, 아직 그려지지 않은 멋진 그림이며, 아직 인간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미지의 우주 공간이며, 아직 시작되지 않은 세기의 로맨스인 것이다.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의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나는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한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파우스트2부는 문학적 시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철학적 연금술과 그노시스파 사상에서 시작하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까지 이어지는 황금사슬의 한 고리다.

-칼 융, 조성기 역, 기억, , 사상, 김영사, 2007, 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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