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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 12. 너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도 잃었을 걸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 12. 너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도 잃었을 걸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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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너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도 잃었을 걸

 

 

캠벨: 우리의 진정한 입문의례는,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의 구루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관계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체험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산타클로스는 없습니다. 산타클로스는 관계를 인식하는 길로 아이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없이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 인생이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모이어스: 조르바는 인생에 대하여, “말썽?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말썽 아닌가하고 있습니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132~133.

 

 

돌아올 기차표가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온 센에게, 용으로 변신한 하쿠는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하쿠의 듬직한 등 위에 올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센. 그녀는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하쿠의 등허리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강력한 기시감을 느낀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이 황홀한 느낌, 이토록 행복한 느낌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밤하늘은 거대한 강처럼 느껴지고 나를 등에 태운 하쿠의 이 체온은 내가 분명 느껴본 적이 있는 따스함이다. , 그래, 그거였어……. 센은 마음속 깊숙이 둥지를 튼 하쿠의 기억을 드디어 발견해내고 눈물이 그렁해져 고백한다. “하쿠, 엄마한테 들은 얘기야. 기억은 흐리지만. 내가 어렸을 때 강물에 빠졌는데,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대. 문득 생각이 났어……. 그 강의 이름이 코하쿠였어……. 네 본명은 코하쿠야…….” 그 순간 하쿠의 몸을 둘러싼 수백만 개의 용의 비늘이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화르르 흩어지며 하쿠는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쿠를 겹겹이 옭아매던 가혹한 운명의 사슬이 이제야 벗겨진 것이다. 손을 맞잡고 볼을 비비는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흩어진다.

 

 

 

 

치히로! 고마워!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야.” 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으로 웃음 짓는다.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신의 이름처럼 멋져!” 하쿠는 자신도 센의 진짜 이름 치히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낸다. “나도 생각났어. 네가 내 안에 빠진 신발을 주우려고 했었지?”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자 강의 신이었던 하쿠는 인간 세계에서 퇴출당해야 했고, 하쿠는 자신의 이름도 존재도 잊은 채 마녀의 부하가 되어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쿠는 문명이 삼켜버린 자연이었고, 도시가 짓밟은 생명의 입김이었다. 치히로도 기억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하쿠는 그녀를 집어삼키지 않고 얕은 곳으로 옮겨 살려주었다는 것을. “맞아, 네가 나를 얕은 곳으로 옮겨줬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던 하쿠가, 연약한 소녀 센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운명을 되찾게 된다.

 

 

 

 

이제 봉인은 풀렸다. 두 사람의 운명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운명의 봉인은 센-치히로, 그리고 하쿠의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운명의 전투로 풀린 것이다. 너를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이 곧 나를 찾는 유일한 열쇠였다. 너를 찾지 못했다면,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나는 나의 존재 또한 잃어버렸을 것이다. 센의 영웅적인 면모는 그녀가 헤라클레스처럼 대단한 힘을 가지거나 아테나처럼 출중한 지혜를 가져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욕망을 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임무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자아라는 정해진 실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주어진 모든 상황에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내 것을 지켜야 한다는 애착을 어느새 끊어버린 그녀에게는 이미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센은 강력하고 적극적이며 투사적인 영웅의 전형이 아니라 지극히 내향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엄청난 폭발력, 에너지를 끊임없이 자기 안에 가두어 놓는 내성적 캐릭터 속에 잠재된 정화와 재생, 치유와 배려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심드렁하고 무표정하며 몰개성적으로 보였던 치히로의 얼굴이 어느새 총명하고 매력적인 센의 이미지로 바뀌게 되는 것도, 그녀가 지닌 내면의 폭발력이 육화된 결과가 아닐까.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무대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대원사, 1996,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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