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하찮은 흔적에서 빛나는 상징을 읽어내는 자, 그는 승리할지니……
“치히로! 뭐 하는 거니? 어서 와.” 엄마, 아빠의 부름으로 센(신화적 자아)은 어느새 치히로(일상적 자아)로 돌아온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는 철없고 나약하기만 하던 센이 자신들을 구원해준 ‘여신 포스’를 장착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서 집으로 가자고 야단법석이다. 하쿠의 말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걷던 치히로는 터널을 다 통과하고 나서야 터널 저편의 세계, 자신을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저 어두운 심연의 세계를 바라본다. 어떤 언어로도 정리할 수 없는 치히로의 마음을 아름다운 주제가가 대신해주는 듯하다.
슬픔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너머에서 분명히 당신과 만날 수 있어. (……) 살아 있는 신비함. 죽어가는 신비함. 꽃도 바람도 도시도 모두 같아. (……)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린 거울 위에도 새로운 풍경이 비춰져 (……) 바다의 저편에서는 이제 찾을 수 없어. 빛나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까.
저 아련한 노랫말처럼,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은 우리 안에 있다. 천복을 따르는 것은 자기 내부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지 외부 세계의 ‘정복’이나 외계 생명체의 ‘구원’이 아니다. 조셉 캠벨은 영웅의 마지막 임무는 하계에서 얻은 깨달음을 ‘원래의 세상’ 속에서 ‘재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센이 된 치히로, 하쿠를 품어 안은 센을 통해 우리 가슴에 스며들어온 신화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미션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을 거부하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중요성을 박탈하여 현실에서 멀어지는 대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현실을 더욱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능동적인 판타지다. 그가 느낀 문명에 대한 절망, 인간에 대한 비애가 아무리 깊고 어두울지라도 그가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에 결코 길을 내주지 않는 이유도 이 능동적 판타지에 기반한, 지극히 명랑하고 낙천적인 신화적 상상력에 있다. 그는 인간과 자연, 주체와 타자,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인 거대한 장벽의 틈새를 포착해낼 힘이 아직 우리 문명사회에 가녀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아티스트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로 인해 우리는 신화로 들어가는, 아직 닫히지 않은 입구가 조금은 남아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직 완전히 밀폐되지는 않은, 그 가느다란 신화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실오라기 같은 생명의 햇살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대한 예술의 마그마로 폭발시킨다.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물들이 아직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 신화와 현실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극을 메우는 저마다의 ‘비법’을 탐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 ‘비법’은 물론 하루아침에 전수될 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먼저 간 어진 친구들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는 그 비법의 조각난 흔적들을 탐험해볼 수는 있다.
캠벨은 이 비법을, 신화가 풀어내는 무의식의 비밀을 통해 발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신화적 상징과 서사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신화에 숨겨진 삶의 비의를 추출했다. 캠벨은 속삭인다. 모든 곳에서 상징을 보라. 죽음을 딛고야 일어서는 삶의 비애를 긍정하라.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이미 주어진 삶의 고통을 부정하지 말라. 타자를 죽이고 그 시체를 먹어야만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 그것이 삶임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기쁘게 참여하는 희열, 그것이 신화 속 영웅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이라고. 비논리적이라고, 비과학적이라고, 난센스라고 비웃지 말고, 신화를 통해 인류의 잊힌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라고.
괴물을 죽인답시고, 미신을 타파한답시고, 우리 안에 은거하던 소중한 신들까지 죽이지는 말라고. 운명의 미로에서 좌충우돌하며 삶의 신비를 하나씩 걸음마 하며 배웠던 영웅들의 숨 가쁜 호흡을 들어보라고.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은, 지금 여기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을 성소(聖所)로 만드는 것이라고. ‘덧없는’ 신화의 ‘명징한’ 물질성을 눈치 챈 사람은, 어디서나 신의 광휘를 보고, 어디서나 신의 축복을 읽어낸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꿈,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수줍은 꿈을, 밤새워 공들여 또박또박 종이 위에 적어보자.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신화다.
어떤 것도, 신(神)조차 우리의 자아보다 더 크지는 않다.
(……) 한 푼도 없는 나나 당신도 이 땅의 알짜를 구입할 수 있다.
(……) 어떤 미약한 물건도 우주의 수레바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나는 만물에서 신을 보고 듣지만 조금도 신을 이해하진 못한다.
(……) 나는 거리에 떨어진 신의 편지들을 본다. 그 하나하나에 신의 서명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놓아둔다. 어디로 가든
또 다른 편지가 틀림없이 영원토록 올 것을 아는 까닭에.
-월트 휘트먼의 詩, 『풀잎』(185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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