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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18.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18.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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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레드는 브룩스의 안타까운 죽음과 앤디의 믿을 수 없는 탈주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트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가도 될까요?”라고 묻는 레드에게 지배인은 말한다. “일일이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가시라고요.” 레드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40년 동안은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허가 없인 한 방울도 쌀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죠. 일부러 죄를 지어 쇼생크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었죠. (……) 내가 원하는 건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두렵지는 않으니까요. 제 발목을 잡은 한 가지는 앤디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주거지를 이탈하여 앤디가 말했던 벅스톤으로 떠나는 레드. 프루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가지 않은 길을 현실에서 만난 듯한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레드가 만난 것은 바로 30년 감옥 생활 끝에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앤디가 말했던 흑요석 밑에는 그가 정성 들여 쓴 편지와 자유의 땅으로 떠나기 위한 여비가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멀리 오셨을 테니 좀 더 멀리 오셔도 상관없겠죠? 그 도시 기억하시죠? 지후아타네오. 저와 함께 사업을 꾸려갈 친구가 필요하답니다. 보고 싶어요.”

 

 

 

 

레드는 생애 두 번째로 죄를 짓는다. 주거지 이탈. 앤디의 편지는 레드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한 번도 마음껏 꿈꾸지 못했던 자기 안의 희망이었음을 레드는 깨닫는다. “너무 흥분돼서 앉아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유를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이었죠. 결과가 불확실한 긴 여로에 오른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친구를 만나 악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꿈속에서처럼, 태평양이 파랗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희망합니다.” 한 번도 태평양을 직접 보지 못한 레드의 눈빛은 저 아름다운 지후아타네오를 목격하자마자 앤디의 꿈을 한순간에 이해한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독방에서도 늘 지후아타네오를 생각했던 앤디의 꿈을,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던 앤디의 꿈을. 앤디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기에 아무도 다다르지 못한 대답에 다다른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것.

너는 무엇을 믿는가? 모든 사물의 중량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의 양심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동정(同情).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의 희망을.

너는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가? 항상 모욕하려 하는 사람을.

네게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것.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50~251.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던 한때 레드는 자기혐오에 빠졌고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긴 제약을 스스로의 무능력으로 오인한 것이다. 앤디는 가장 절망적인 인간들로부터도 자신의 희망을 읽어냈고, 최고의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고의 고통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앤디는 모두가 포기해버린 질문, 생각하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져서 질문하기조차 싫어하는 질문을 매일 던졌다. 19년 동안.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감옥의 철책을 스스로 무화시켰다. 그는 단지 제 한 몸 탈옥한 것이 아니라 쇼생크에 있는 사람들, 쇼생크처럼 스스로를 잿빛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주인이 되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강간과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낮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임무보다 항상 초과근무를 하며 쇼생크 감옥에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었고, 밤에는 마치 텅 빈 독방에 따스한 수프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만든 진정한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미녀 포스터 뒤에 동굴의 형태로 아로새겨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희망을 가꾸기 위한 제의를 20년 가까이 홀로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닳아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그 작은 망치로, 쇼생크를 탈출하려면 600년은 족히 걸릴 것만 같았던 작은 망치만으로도.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왠지 뒤통수가 가렵다. 앤디를 괴롭히던 감옥을 바라볼 때는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여겼던 관객들은 이제 앤디가 떠나버린 지후타네오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이 감옥이 아닌가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흔쾌한 의심이니 마음껏 던져도 좋다. 마음속에 앤디의 아름다운 탈주를 보듬은 사람들은, 우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 모든 중력의 악령과 싸우는 용기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 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탈주를 꿈꾸는 밝은 눈이, 죽음조차 죽여버리는 우리의 용기만이, 우리 안에 잠자는 저마다의 모차르트를 깨우고, 우리 안에 숨겨진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권태로운 침묵의 옷장에서 끄집어낼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네 문을 활짝 열어두어라!

낡은 것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너도 한때는 젊었지만, 이제-훨씬 더 젊다!

(……)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내 자신의 혈연이며 함께 변해간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

그들도 늙어버리고 쫓겨났다:

오직 변하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

(……) 이미 밤낮으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네,

새로운 친구들이여! 어서 오라! 때가 왔다! 때가 온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축하하며, 하나로 뭉친 승리를 확신하고,

축제 가운데 축제를 한다:

친구 짜라투스트라가 왔다, 손님들 가운데 손님이!

이제 세계는 웃고 끔찍한 커튼은 찢기고,

빛과 어둠을 위한 결혼식이 다가왔다…….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31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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