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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1장 - 4. 부여받은 리(理)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장 - 4. 부여받은 리(理)

건방진방랑자 2021. 9. 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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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여받은 리()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기 부여받은 리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오상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이라는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물체도 생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모두 제 나름대로의 리()를 품부 받는다는 말입니다. 태아를 보면 올챙이처럼 생겼죠? 왜 사람과 사람이 결혼하면 토끼를 낳지 않고 사람을 낳을까요, 혹시 애를 밴 후 진화를 잘못해서 아기가 나오지 않고 올챙이가 나오는 그런 흉측한 경우는 없을까요? 근세 생물학에서 가장 큰 문제가 이것이었습니다. 왜 어김없이 사람이 나오는가?

 

멘델(1822-1884) 정원에다가 완두콩을 심어서 누런 콩 빨간 콩이 나오는 빈도수를 조사했고 이에 따라서 유전 법칙의 체계를 세웠는데, 사실 이것은 생물학이라기보다는 통계학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유전법칙이 성립하는 근본적 이유는 전혀 설명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멘델은 현상적 통계의 법칙은 발견했지만 생물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던 거죠. 유전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한 것은 저 유명한 왓슨과 클릭의 ‘DNA데옥시리보핵산 유전자 구조의 해명입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해명되면서 유전의 메카니즘이 설명된 거 아닙니까? 유전은 DNA에 있는 염기의 순서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그 염기의 순열만 바뀌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이상한 동물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DNA의 핵산의 구조는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DNA라고 해서 특별히 대단할 것은 없습니다.

 

모든 사물의 태어나는 데에는 나름대로 부여받은 리()가 있어서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덕()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호랑이의 행동양식을 보면 호랑이의 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미국에서 동물의 왕국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런 비디오는 사다가 볼 만해요. 영화학적으로 말해도 그런 영화는 상당히 찍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사자에 대해서 보았는데 사자노릇하기가 그렇게 힘든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나는 그 놈들이 힘이 세어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잡아먹을 수 있는 줄 알았었는데 사자들이 들소(Buffalo)한테 맥을 못 추더군요. 사자 몇 마리가 어미 들소를 유인하면 나머지 사자들은 새끼 들소를 덮쳐서 먹는 그런 전술이 없이는 맹수의 왕 사자도 굶어 죽겠더라고. 그런데 들소들이 사자의 공격에 대해서 진을 치는 것을 보니 손자병법 뺨칠 정도입니다. 그러니 먹이를 사냥하지 못한 사자들이 평원에서 기아와 싸우는 모습은 정말 처절합니다. 나는 사자하면, ‘짜식들 동물의 왕이니까 참 좋겠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자노릇도 거저하는 게 아니더라니깐! 자연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사자로서의 엄청난 지모와 지략의 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자가 들소의 진을 쳐다보고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덤벼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동물들의 판단력도 인간보다 조금도 떨어지지 않아요. 인간 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해서 동물의 세계를 우습게 보면 큰일 납니다.

 

이리의 내 하숙집 주인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훌륭한 분인데, 그분이 가꾸는 정원의 넓은 공간에 거미가 친 집을 보면 공간의 처리방식이 요새 화가나 건축가는 저리 가라입니다. 그 거미집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 실을 여기다 맬 발상을 했을까신비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거미줄을 모두 걷고 며칠 뒤에 보면 매번 다르게 거미줄을 치는데 역시 기발합니다. 바로 이것이 거미에게 품부된 리()입니다.

 

 

 

, 循也. , 猶路也. 人物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事物之間,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
솔은 따름이요. 도는 로()와 같다. 사람과 물건이 각기 그 성에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면 일상생활 하는 사이에 각기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이른바 라는 것이다.

 

거미는 분명히 거미의 성을 따르고 호랑이는 호랑이의 성을 따릅니다. 여기 자연은 네이춰가 아니고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서 거미는 거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는 뭐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주자는 근대 성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당위(Sollen)문제를 제기합니다. 당행지로(當行之路)가 주자에게 있어서는 당연지리입니다.

 

 

 

, 品節之也. 道雖同, 而氣稟或異, 故不能無過不及之差. 聖人, 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 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敎.
수라는 것은 그것을 절도 있게 닦아서 만드는 것이다. 성과 도가 비록 같다고 해도 기품은 혹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고 모자란 차이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과 물건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인()하고 품절(品節)하여 천하의 질서로 만드니 이것을 일러 가르침이라고 한다.

 

주자는 성((() 중에서 성과 도선천적(a priori) 세계로 돌립니다. 인간세의 질서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도덕(Morality)’입니다. 거기에 맞게 만드는 것이 교육이죠. 주자는 ()’()’ 까지를 선천적인 법칙의 세계로 보고 ()’는 후천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천적인 것의 근거로서 기품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용(中庸)이 말은 앞에서 논했던 네이춰와 너춰를 총괄해서 말한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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