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3. 추구해야 할 강함
故君子和而不流, 强哉矯! 中立而不倚, 强哉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그러므로 군자는 조화를 이루어도 휩쓸리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셈이여! 가운데 서서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셈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는 막혀 있던 시절의 뜻을 바꾸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셈이여! 나라에 도(道)가 없을 때는 죽음에 이르러도 지조를 바꾸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셈이여! 此四者, 汝之所當强也. 矯, 强貌. 『詩』曰: “矯矯虎臣,” 是也. 倚, 偏著也. 塞, 未達也. 이 네 가지는 자로 네 녀석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강함이다. 교(矯)는 강한 모양이다. 『시경』에선 ‘굳세고 굳센 호랑이 같은 신하’라고 쓰여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의(倚)는 치우쳐 붙은 것으로 편당 짓는 것이다. 색(塞)은 영달하지 못함이다. 國有道, 不變未達之所守; 國無道, 不變平生之所守也. 此則所謂中庸之不可能者. 非有以自勝其人欲之私, 不能擇而守也, 君子之强, 孰大於是? 국유도(國有道)엔 벼슬하지 않던 때의 지키던 것을 바꾸지 않으며, 국무도(國無道)엔 평생의 지조를 바꾸질 않으니, 이것이 ‘중용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긴 것이 아니면, 선택하여 지킬 수 없으니, 군자의 강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夫子以是告子路者, 所以抑其血氣之剛, 而進之以德義之勇也. 右第十章. 부자께서 이것으로 자로에게 알려준 것은 혈기의 강함을 억눌러 덕과 의의 용맹으로 나아가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오른쪽은 제10장이다. |
이 문장 앞에서 남방지강(南方之强)과 북방지강(北方之强)을 테제와 안티테제로 제시해 놓고서 이제 비로소 이강(而强)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네가 힘쓸 강은 여기서부터다.” 하고 공자가 자로에게 결론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화이불류(和而不流)에 관해서는 『논어(論語)』 「자로(子路)」을 펴 보세요. ‘군자는 <어떤 집단에> 조화되지만 그렇다고 같아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소인은 같아지기는 잘하는데 조화를 못 이룬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이 문장의 뉘앙스가 재미있죠? 이 문장도 『중용(中庸)』의 문장과 비슷한 맥락이예요. 육군 중위 녀석이 경마장에 가서 경마꾼들과 동(同)을 해버려! 그래서 강도질을 해! 육사를 나오고 서울 법대에 위탁교육을 받은 엘리트 녀석이 경마에 빠지고 지 애인하고 놀기 위해 강도질을 했단 말이야.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하여튼 이런 사건이 자주 터지면, 감추질 말고 적나라하게 까발려져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자극이 되서 한국군대는 필연적으로 지원병 제도(volunteer system)로 가야 해. 국민개병제는 이제 재고되어야 할 제도라고 생각되요. 군사독재가 성립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 원인이 국민개병제란 말이요.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세금을 국방예산에 쏟아 붓고, 세계화니 경쟁력 강화를 운운하면서 그 창조적 시기의 소중한 이 땅의 젊은이들을 몽땅 무차별 군대로 쓸어 넣느냐 말예요?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모집된 장정들을 가지고 정예군대를 만들어야지,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청년들을 죄다 잡아다가 군인 만드는 것이 꼭 국방과 애국의 최선의 방책인 것 같지 않아요. 건강한 청년들이 눈 내리는 데 쓸데없이 연병장 빗질하고 있는 게 우리 국민의 에너지효용입니까? 지원병제도로 안가고 관리할 수 없는 해이한 인력을 붙들고 있으면 계속 이런 유사한 사건들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신문 사설에는 이런 것까지는 얘기를 안 하던데, 어쨌든 이런 사건이 더 터져야 돼. 그래야 군대가 제 길을 잡아요. 이번 육군 중위 사건은 얼마나 한국 군대가 썩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물론 분단상황이라는 이 불행한 현실이 청산될 때까지는 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국민개병제가 아닌 일본, 미국에 유학하면서 그것이 절대적 옵션이 아니라는 생각에 충격이 오더군요. 하여튼 군대가 정신 차려서 우리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교육만 시켜줘도 좋겠어요.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시킬 줄 알고 불합리한 상황도 슬기롭게 인내할 줄 알고 규율을 지킬 줄 아는 덕성을 군복무시기에 함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화이불류 강재교(和而不流 强哉矯)” 그 다음에 강재교(强哉矯)라고 계속 후렴구처럼 나오죠. 이것은 『시경(詩經)』 노송(魯頌) 「반수(泮水)」篇에 ‘교교호신(矯矯虎臣)’으로 나오는 말입니다. 교(矯)는 강한 모양을 나타내는 형용사인데, 강재교(强哉矯)는 강하도다 단단함이여! 이런 느낌의 말이죠.
“중립이불의 강재교(中立而不倚, 强哉矯)!” 전후좌우를 살펴서 의지적 선택에 의한 중도를 고수한다는 말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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