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籌策)
뭐 용어야 개념을 정확히 알면 되는 것이지 글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주책(籌策)이라는 글자 자체를 좀 설명해야겠다. 주책(籌策)이란 단어가 좀 낯선 단어라서. 여기에 나온 주책(籌策)은 우리가 흔히 ‘주책이 있다’ ‘주책이 없다’라고 할 때 쓰는 주책과는 다른 단어이다. 그 주책은 순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나온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그 주책은 ‘일정한 생각이나 줏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주책(籌策)은 ‘이리저리 따진 끝에 생각한 꾀’라는 뜻이다.
책(策)이라는 글자는 별로 어려운 글자가 아니니 설명할 것이 없고, 주(籌)는 계산한다, 따진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헤아린다’는 말이 있다. 단순히 세어본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이치에 맞는지 짚어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 말과 아주 비슷하다. 센다는 뜻도 되고, 따져본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이 주(籌) 자가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닌데, 그 중 그나마 많이 쓰이는 것이 ‘주비위(籌備委)’라는 단어다. 정당이나 사회단체 같은 것을 만들 때 미리 모여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이다. 어려운 한자 단어 잘 모르는 신입 기자들이 종종 ‘준비위’라고 썼다가 곤욕을 치르게 만드는 바로 그 단어다. ‘준비’라고 써도 될 것을 굳이 ‘주비’라고 쓰는 것은 ‘우리는 잘 헤아려보고, 곰곰이 생각해가면서 준비한다’는 일종의 자화자찬이 좀 들어간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어쨌든 주책(籌策)이라는 것은 태음적으로 일일이 따져보고 구체성을 하나하나 모아가는 방식으로 쓸 만한 꾀에 도달한 것을 의미하다. 글자 자체에 태음적인 접근방법이 들어 있다.
‘절세의’라는 수식어가 붙으니까 주책(籌策)이란 것이 너무 대단하고 웬만해서는 도달하기 힘든 수준으로 보이기 쉬운데, 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주책(籌策)이란 각각의 영역에 다 있는 것이다. 우주의 원리나, 국가의 원리, 사회의 원리같이 큰 부분에만 주책(籌策)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요리의 원리, 운전의 원리, 구두 닦는 원리, 사상심학같이 어려운 주제를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도록 풀어쓰는 원리【이 책을 쓰면서 어떻게 좀 도달해보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고 있는 부분이다】 등등, 아무리 작은 일에도 주책(籌策)이라 부를 수 있는 경지가 있다. 물론 아무리 작은 영역에서도 주책(籌策)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계속해서 하는 작은 영역의 일이라면 뭐 지독하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산골에서 평생 벌만 치신 분에게서 벌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속에 세상 사는 진리가 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평생 구두만 수선하신 분에게서 구두를 통해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이 다 주책(籌策)이다. 다만 내가 주책(籌策)에 도달했던 한 영역에서의 경험을 다른 부분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하면 더 넓은 영역에 도달하게 되고, 어느 순간에는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일에서 태양인만큼이나 천시(天時)에 밝아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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