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방심하면 고개를 드는 긍심(矜心)
긍심(矜心)도 교심(驕心)과 마찬가지로, 잘 극복된 사람도 조금만 방심하면 고개를 든다. 특히 긍심(矜心)은 원치 않는 과도한 경쟁 상황에 몰렸을 때 나타나기 쉽다. 때론 경쟁 상황에서, 혹은 경쟁의 후유증으로 나타난다.
정치인 중에서 소음 성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김근태(金槿泰, 1947~2011) 의원이다. 김근태 의원 이야기를 좀 해보자. 원래 재야라는 곳이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모아놓았을 때 가장 힘든 것이 화합이다. 그래서인지 재야의 거물 소리를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구만 끼면 판 깨진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인 상황에서도 김근태 의원이 끼면 ‘김근태가 끼었으니 판은 안 깨지고 굴러가겠구먼’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라서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소음인이 조직의 화합을 잘 이끈다는 것은 긍심(矜心)이 상당히 극복되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런 김근태 의원에게서 긍심(矜心)을 관찰한 일이 있었다.
작년 대선에서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盧武鉉, 1946~2009)과 정몽준 간의 후보 단일화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 주장이 옳았느냐 틀렸느냐, 설사 옳았다 하더라도 김근태가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이 옳았느냐 등등을 놓고 말들이 많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 과정까지는 할 이야기가 없고, 필자가 김근태 의원의 긍심(矜心)을 본 것은 막상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그것도 김근태 의원이 바랐던 대로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된 뒤의 일이다.
우연히 김근태 의원의 찬조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선거 유세에 나온 모든 연설자가 ‘국민후보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도 유독 김근태 의원만은 ‘단일후보 노무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었다.
대선 막판의 민주당선거본부 생각은 대충 이랬던 것 같다. 후보 단일화는 끝났다. 대중은 좀 냉정한 면이 있다. 예선 탈락자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일찍 식어버린다. 정몽준 의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대선 막바지에 상당히 식어버린 상황이었다【물론 마지막에 이상한 사건으로 한 번 크게 흔들기는 했지만】. 따라서 ‘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써도 정몽준 지지자의 표를 노무현에게로 결집시키는 효과가 보기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단일후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노무현을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예선을 통과해 올라온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결국 국민들이 최종 경쟁자로 선택한 사람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편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국민후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밀고 나간 게 아닌가 싶다.
상황을 보면 민주당선거본부의 생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설사 민주당선거본부 생각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슬로건은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거용 홍보라는 것이 이미지 창조 작업이라서, 반복 광고의 효과를 중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유독 김근태 의원 한 명만 다른 구호를 사용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근태(金槿泰, 1947~2011) 의원의 마음에는 단일화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근태 의원 정도의 정치인이 그런 아쉬움을 의식의 수준에서 느꼈다면 오히려 조절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그런 아쉬움이 작용했기에 ‘단일후보’라는 표현에 집착하게 된 듯하다. 즉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적합했던 논리를 이미 단일화가 이뤄진 변화된 상황에 다시 적용한 것이다. 단일화 국면과 단일화 이후 국면은 다른 상황, 다른 영역이다. 적용할 논리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 영역을 무리하게 뛰어넘어 적용하는 것, 이런 것이 긍심(矜心)이다.
물론 김근태 의원에게서 긍심(矜心)이 보였다 하더라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 노무현(盧武鉉, 1946~2009)에 대한 열성 지지층이나 소장파 의원들과의 관계가 잘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김근태 의원은 나름대로 선거에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긍심(矜心)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지만 긍심(矜心)에 휘둘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만일 긍심(矜心)에 휘둘렸다면 선거에 도움을 주는 전제 조건으로 자신의 후보 단일화 주장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을 것이다.
긍심(矜心)이란 이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굳이 김근태 의원을 예로 들어보았다. 교심(驕心) 때도 이야기했지만 모든 사심(邪心)이 마찬가지다. 극복했다고 생각해도 언제 또 고개를 들지 모르는 것이다. 김근태 의원의 경우 여러 가지로 긍심(矜心)이 고개를 들 만한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할 수 있는 상황 등등. 그런 상황에서도 사심(邪心)이 고개를 들지 않게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에 사심(邪心)이 어느 정도 극복된 사람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교 쪽의 용어를 쓰자면 돈오(頓悟)가 되었어도 점수(修)가 필요한 이유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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