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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1부 씨앗 - 1장 두 차례의 혁명,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1부 씨앗 - 1장 두 차례의 혁명,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건방진방랑자 2022. 1. 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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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두 차례의 혁명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그것은 혁명이었다. 인류는 마치 500만 년 전에 탄생한 이후 499만 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번데기로 지내다가 15000년 전에 갑자기 화사한 나비로 탈바꿈한 듯했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햇빛을 누릴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 최초의 혁명에서

 

 

인류의 화려한 변태를 낳은 것은 농업과 사육이었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이나 구석기로 생활하다가 15000년경부터 신석기시대로 접어들었다. 두 시대는 단순히 신구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석기시대라도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음식물을 구하는 방법에 있다예전에는 석기를 만든 방식을 기준으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나누었다. 구석기시대에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를 썼고,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갈아서 만든 간석기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기준보다 수렵-채집 생활과 농경 생활을 기준으로 두 시대를 구분한다. 예전까지는 동물을 사냥하고 먹을 만한 식물을 얻거나 캐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으나, 신석기시대부터는 동물을 사육하고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음식물을 생산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처음으로 노예(가축)’를 거느리고, 잉여 생산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의 맹아는 이때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농업과 사육은 인간에게 붙박이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아직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양식을 구하러 떠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무시무시한 빙하기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따뜻한 남쪽을 찾아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가히 혁명이라고 할 만한 변화였다. 그래서 이것을 농경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혁명의 혜택이 처음 주어진 곳은 어디였을까? 처음에 농경과 사육이 행해진 곳은 서아시아 북부의 고원지대, 바로 오늘날 터키가 자리 잡은 소아시아였다. 이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아 작물과 가축을 키우기에 적합했다이 점에 관해서는 세계지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구 위의 땅은 아주 넓은 것 같아도 실상 원시 농경이 이루어질 만한 지역을 찾아보면 두 곳밖에 없다. 터키 부근과 북아메리카 평원이다. 유럽은 너무 춥고, 아프리카는 너무 더우며, 남아메리카 온대 지역은 험한 안데스 산지인 탓에 농경이 어렵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도 오늘날 식용작물의 원형들은 대부분 서아시아(밀ㆍ귀리ㆍ보리)와 북아메리카(옥수수ㆍ감자ㆍ강낭콩)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한 것들이며, 우유를 먹기 시작한 것도 서아시아 사람들이 처음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인간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까지도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는 수천 년의 세월과 한 차례의 혁명이 더 필요했다. 고원의 환경은 나날이 늘어나는 인구와 갈수록 커지는 촌락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석기 인간은 점차 고원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터키의 고원지대(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아래쪽이라면 어딜까?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곳, 바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일대다. 점차 이 두 강의 유역으로 내려온 이들은 기원전 4000년경~기원전 3000년경 도시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을 이루었다(물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산 아래에 아무도 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평지의 삶은 산지보다도 더 원시적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 혁명의 성과가 바로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로 두 강의 사이 지역이라는 뜻) 문명이다.

 

하지만 문명의 규모가 커진 만큼 문제점도 커졌다. 고원의 촌락에서는 자연 강우만으로도 작물의 재배와 가축의 사육이 가능했으나 대처로 내려와 도시를 이룬 다음에는 그게 쉽지 않았다. 도시는 인구가 밀집한 곳이므로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강은 물을 공급해준다는 점에서 좋지만 자칫하면 범람하기 일쑤이므로 언제나 통제가 필요하다. 마침 치수(治水)의 조건이 좋다는 게 다행이랄까? 촌락 규모의 사회에서는 큰 강을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풍부한 인력이 존재하는 도시의 조직 사회에서는 관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점차 척박한 고지대의 약탈 농경(토질을 최대한 이용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농경 방식)에서 관개를 이용한 넉넉한 농경으로 이행했다.

 

초기 문명에서는 치수에 성공하면 도시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을 지배하는 자가 왕이 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만이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 동부 연안을 거쳐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고대 문명권을 가리켜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부른다. 초승달의 다른 쪽 끝에서는 이 무렵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최초의 도시 예리코 문명이 최초로 생겨난 곳은 넓은 평야가 아니라 비좁은 고원지대였다. 이것은 기원전 8000~기원전 7000년 무렵에 형성된 도시 예리코다. 더 앞선 시기의 도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예리코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도시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당시에는 분명히 이런 도시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강에서 일어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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