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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1부 씨앗 - 1장 두 차례의 혁명, 강에서 일어난 사람들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1부 씨앗 - 1장 두 차례의 혁명, 강에서 일어난 사람들

건방진방랑자 2022. 1. 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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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에서 일어난 사람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의 나일 강변에서도 독자적인 문명이 발생했다. 나일 강은 메소포타미아의 강들과 다른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일 강 하구 유역에는 특별한 지형적 굴곡이 없어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했던 것이다. 일단 그 결과는 홍수였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은 재해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상류로부터 내려온 퇴적물이 쌓이면서 나일 강 삼각주의 토양이 비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치수는 중요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와 달리 이 지역의 지배자들은 오히려 적당한 시기에 강물이 범람해주기를 기원했다. 그러니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년경~425년경)가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부른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그가 이집트에 간 때는 이집트 문명이 발생한 지 2000여 년이 지났을 무렵이니까, 지금 우리가 고대 그리스를 바라보는 것처럼 이집트를 보았을 것이다).

 

자연의 혜택으로 이집트인들은 메소포타미아처럼 고원 시대를 거치지 않고 직접 문명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었다. 나일 강변을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농경 촌락은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작은 촌락들이 뭉쳐 큰 세력권을 이루었고, 이내 이들끼리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촌락이 도시로 변하는 과정이 메소포타미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머잖아 통일을 이룰 것은 필연이다. 과연 남북으로 기다랗게 뻗은 나일 강 유역의 촌락들은 결국 두 개의 지역적 통합체를 이루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남쪽 상류의 것을 상왕국, 북쪽 하류의 것을 하왕국이라고 이름 지었다.

 

 

나일 강의 선물 이집트 귀족의 묘에서 발굴된 벽화인데, 가축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일 강은 이집트의 농부들에게 천연비료나 다름없었다. 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해 토지가 비옥해졌을 뿐 아니라 불어난 강물은 중요한 용수원이 되었다.

 

 

이렇게 한동안 두 왕국이 병존하는 시대가 이어졌으나 서로의 세력권이 넓어지자 최종적 통일이 불가피했다. 기원전 3100년경 상왕국의 메네스 왕이 하왕국을 정복하면서 드디어 통일 이집트 왕국이 성립했다.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처럼 사방이 트여 있지 않고 나일 강 양편으로 폭이 평균 5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지형이었기에 (서쪽과 남쪽은 불모의 땅이고, 북쪽과 동쪽은 지중해와 홍해가 가로막고 있다) 통일 왕국의 성립이 빠를 수 있었다(당시의 정복자들은 원주민이 아니라 이민족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른바 ‘4대 문명의 발상지가운데 이집트의 연대가 가장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통일 시기 이집트의 역사는 역사라기보다 전설에 가깝다. 이집트의 역사가 비교적 확실해지는 것은 제3왕조부터다. 이때부터 이집트의 역사는 보통 고왕국 시대(기원전 26세기~기원전 22세기, 4~8왕조), 중왕국 시대(기원전 20세기기원전 17세기, 12~14왕조), 신왕국 시대(기원전 16세기~기원전 11세기, 18~20왕조)로 나누고, 고왕국과 중왕국, 중왕국과 신왕국 사이 두 차례의 이민족 지배기를 각각 제1중간기(기원전 22세기~기원전 20세기, 9~11 왕조)와 제2중간기(기원전 17세기~기원전 16세기, 15~17왕조)로 구분한다. 나중에 보겠지만 신왕국 시대 이후의 이집트는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위용을 잃어버리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결국 로마의 속주로 편입된다.

 

메네스 왕의 통일에서부터 이집트 왕국이 멸망해 로마의 속주가 되는 기원전 30년까지 치면, 이집트 왕국은 무려 3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따라서 이것만 해도 몇 권의 책으로 엮어야 마땅하겠지만, 그것은 이집트의 국사(國史)’에 맡기고 여기서는 이집트 문명권과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이 어울려 오리엔트 문명을 형성하는 측면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집트의 통일 첫 왕조시대의 무덤에서 발굴된 매장판이다. 이 판 가운데를 보면 상왕국의 왕이 하왕국의 병사를 몽둥이로 때리려 하고 있다. 상왕국은 흰색 왕관, 하왕국은 붉은색 왕관을 상징으로 삼았으니까, 이 왕이 쓰고 있는 고깔 모양의 관은 원래 흰색이었을 것이다(고대 이집트의 상류층에서는 가발을 쓰고, 그 위에 고깔을 덧쓰는 게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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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사 / 동양사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

강에서 일어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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