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충돌하는 두 문명
신국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3000년 동안 수십 개의 왕조가 등장하고 퇴장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결코 단일한 역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편의상 그것들을 뭉뚱그려 이집트 왕국이라고 부르고 각 왕조에 일련번호를 매겨 구분하지만, 각각의 왕조는 사실상 별개의 나라나 다름없었다(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고대 삼국과 고려, 조선을 ‘한반도 왕국’이라고 통칭할 수 있을까?). 당시 이집트인들은 단일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진행한 게 아니었다.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중국이 곧 천하였듯이, 이집트인들에게 이집트란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 세계 전체였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천하의 주인은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였다. 반면 이집트인들의 ‘천자’는 바로 파라오였다. 사실 파라오는 천자보다 시기적으로 1500년 이상 앞서므로 파라오를 천자에 비유하기보다는 오히려 천자를 ‘중국의 파라오’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파라오가 천자보다 앞서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천자가 하늘의 아들이라면 파라오는 하늘 자체다. 즉 파라오는 지상에 존재하는 신이다. 파라오는 원래 ‘커다란 집’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집이란 곧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고대 이집트 세계는 파라오라는 절대 권력자가 지배하는 제정일치의 강력한 전제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를 제국 체제로 보기도 하는데, 사실은 제국이라기보다 신국(神國)에 가깝다. 로마나 중국 등 후대의 제국들과는 달리 이집트는 속국들을 거느리지 않았으므로 제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만, 이집트의 파라오는 종교적 신앙에서 나오는 신적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제정일치의 성격과 절대 권력의 강도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이집트〉중국〉로마의 순서다】.
그런 파라오의 권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석조물인 피라미드다. 파라오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10만 명이 10년 동안 일해서 한 개를 만들 수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고왕국의 수도인 멤피스 부근에는 여러 개의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오늘날 남아있는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큰 기자의 대피라미드(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제4왕조시대인 기원전 2500년대에 만들어졌다. 파라오의 권위는 아주 일찍부터 확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피라미드는 축조될 당시부터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후대의 피라미드들은 곳곳에 경고문을 새기고 왕의 시신을 감추는 등 ‘도굴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현대인들처럼 이집트 말기 동부 지중해를 장악한 고대 그리스인들도 이집트 관광을 즐겼는데, 이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피라미드들이 완전히 도굴되어 있었다. 20세기에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바위 깊숙이 파놓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편 헤로도토스는 이집트가 피라미드 건축 때문에 국력을 탕진해서 멸망했다고 기록했지만, 오늘날에는 나일 강의 범람으로 농토를 잃은 농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피라미드 건축 사업을 일으켰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 건축은 고대 이집트의 ‘뉴딜 정책’이었던 셈이다】.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 해도 파라오는 지배자로 군림했을 뿐이고, 국가 행정의 실무는 관료 조직이 맡았다. 이집트 관리들은 상형문자를 이용해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겼는데, 오늘날 고대 이집트의 역사가 전해지는 것은 바로 그 덕분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집트 사회는 이미 관료와 귀족, 기술자, 상인 등의 계층 구분이 이루어져 있었으며, 나일 강을 다스려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수학과 토목학, 천문학 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다. 1년을 12개월, 365일로 나누는 태양력을 최초로 사용한 것도 이집트이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집트 문자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랜 것이다.
고왕국 시대는 관개농업이 위주였고, 약간의 국제무역이 행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주변과 관계를 맺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한 시대였다. 그러나 발전은 팽창을 낳는 법이다. 내적 성장이 어느 정도에 달하자 이집트는 점차 변경 지대에 대한 정복 사업의 횟수를 늘려갔다. 그런데 이집트의 주요한 변경인 서북쪽 너머 비옥한 초승달의 맞은편에는 또 하나의 문명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두 문명의 만남은 불가피했다.
▲ 오리엔트 세계 서양 문명의 씨앗을 낳은 오리엔트 일대의 지도다. 초기 문명권은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 비옥한 초승달의 형상으로 발전했다. 소아시아 동부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지방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문명의 중간에 있어 영향을 받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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