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전란의 시대
최초로 맞붙은 동양과 서양
페르시아가 안정을 찾고 명실상부한 세계 제국을 이루자 다리우스의 마음은 다시 서방으로 향했다. 동쪽으로 인도, 남쪽으로 이집트와 리비아를 정복했으니 이제 남은 건 서쪽뿐이다. 인도 내륙은 오지여서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한편, 다리우스는 북방의 스키타이와 싸워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을 북쪽으로 몰아내 이후 침략을 줄이는 데는 일조했다). 물론 다리우스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더 멀리 가면 동북아시아 지역에 또 하나의 강력한 문명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서방의 지중해 세계만 정복하면 다리우스는 ‘천하 통일’을 이루는 셈이었다.
사실 다리우스는 그리스까지 정복할 마음은 별로 없었고 이오니아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페르시아는 일찍이 키루스 시대에 리디아와 이오니아를 정복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은 하나둘씩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이탈했고, 이제 페르시아는 이오니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일 뿐 지배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페니키아는 페르시아의 세력권 안에 들었으므로(페니키아는 해군이 약한 페르시아의 해군 노릇을 자임하고 있었다) 이오니아만 정복하면 지중해 세계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지중해 무역의 독점은 저절로 얻어지는 부수입이 될 터였다.
때마침 이오니아는 폴리스들끼리 반목하고 있었으므로 정복하기에 어려움도 없었다.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데 반해 이오니아에서는 폴리스들 간의 다툼이 경쟁을 넘어 극한적인 대립까지 빚어내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오니아의 폴리스는 성곽도시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본토의 폴리스와 달리 한 번 들어선 참주정치가 근절되지 않고 지속되었던 탓이기도 하다(이오니아의 폴리스는 섬이나 해안에 위치해 지역적으로 고립되었으므로 아무래도 민주정보다는 왕정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모스나 밀레투스가 그런 예다).
분열된 이오니아를 노려보면서 다리우스는 새 수도인 파르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엘람의 전통적 수도였던 수사는 세계 제국의 중심지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으니, 새 수도 건설은 명백히 정복 사업의 일환이다. 파르사가 완공된 것은 다음 황제인 크세르크세스(Xerxes, 재위 기원전 486~기원전 465) 때지만 다리우스는 이미 서방 정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파르사는 나중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페르세폴리스라고 불리면서 페르시아의 공식 수도가 된다(하지만 행정의 중심지는 예전처럼 수사였다).
▲ 천하 통일을 위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측근 참모들과 그리스 정벌을 위한 작전 회의를 하고 있다. 당시 다리우스는 인도에서 그리스까지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말하자면 천하 통일을 위한 회의인 셈이다. 그러나 다리우스는 끝내 천하 통일을 보지 못했고, 서쪽으로 옮겨가는 문명을 붙잡지도 못했다.
물론 다리우스는 이오니아를 무력으로 정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병법의 최고로 치는 것은 중국의 동시대인인 손자(孫子)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참주의 지배를 받는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은 정정이 매우 불안했다. 참주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 나아가 페르시아와도 서슴없이 결탁했다. 당시 이오니아인들은 그리스인을 동족으로 여기고 페르시아인을 ‘이민족’으로 여길 만큼 어느 정도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전의 이익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대외 정복과 대내 치적에서 뛰어난 업적을 선보인 다리우스는 책략에도 매우 능했다. 그는 이오니아 폴리스들의 국내 정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해 그들을 하나씩 페르시아 편으로 끌어들였다.
페르시아의 은근한 침략에 견디다 못한 이오니아인들은 이윽고 기원전 499년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리우스가 바라던 바였다. 게다가 이오니아의 폴리스들은 다리우스의 침략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자의 이해관계에 묶여 한 몸처럼 대응하지 못했다. 다리우스는 반란의 핵심이 밀레투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원전 494년 그는 출동 명령을 내렸다. 머리를 제거하면 아무리 기다란 뱀도 죽는다. 동부 지중해 연안에 길게 뻗어 있는 이오니아 폴리스들의 머리는 바로 밀레투스였고, 페르시아의 목표도 바로 그곳이었다.
세계 제국답게 페르시아군의 구성은 말 그대로 다국적군이었다. 해군은 페니키아가 주력이었고, 육군은 페르시아 본대가 맡았다. 여기에 키프로스와 이집트까지 합세해 무려 600척의 함대가 밀레투스로 진격했다. 이오니아는 밀레투스를 주축으로 사모스, 키오스, 레스보스 등 수십 개의 폴리스들이 공동으로 353척의 함대를 구축해 맞섰다. 유사 이래 최초로 동양과 서양이 정면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페르시아는 전력에서도 우위에 있었지만 사기에서는 훨씬 더 앞섰다. 이오니아 폴리스들은 대전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반목을 일삼았고, 심지어 대열에서 이탈하는 함선도 있었다. 예상한 대로 해전에서 페르시아는 압승을 거두었다. 페르시아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곧장 밀레투스를 바다와 육지 양면에서 포위했다. 성벽이 부서지면서 밀레투스는 함락되었다. 600여 년의 역사에다 흑해에서 지중해 중부까지 수많은 식민시를 거느렸고 철학사에 밀레투스학파라는 굵은 족적을 남긴 폴리스 밀레투스는 폐허로 변했고, 모든 시민은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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