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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1부 씨앗 - 3장 새로운 판 짜기, 수수께끼의 해적들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서양사, 1부 씨앗 - 3장 새로운 판 짜기, 수수께끼의 해적들

건방진방랑자 2022. 1. 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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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새로운 판 짜기

 

 

수수께끼의 해적들

 

 

카데시 전투 이후 오리엔트의 쌍웅인 히타이트와 이집트는 묘하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국력을 탕진한 탓일까? 물론 그 이유도 있겠지만 카데시 전투 이외에 별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단 내부의 문제가 있었다. 이집트는 종교 사제들의 권력과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국가의 기틀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원래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신은 태양신인 레(또는 라)였는데, 여기에 테베를 수도로 삼은 중왕국 초기에 테베의 수호신이던 아몬을 덧붙여 아몬-레 신앙이 생겨났다. 그러나 기원전 14세기의 파라오인 아멘호테프 4세는 수백 년간 섬겨오던 아몬-레를 버리고 일신교적 성격이 강한 또 다른 태양신인 아톤을 받아들이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아크나톤이라고 바꾸고 수도도 아마르나로 옮겼다.

 

정권은 쿠데타로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지만 생활은 다르다. 아멘호테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간의 신앙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았고, 그의 돌출 행동은 결국 당대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권좌에 복귀한 아몬-레 사제들은 예전보다 더욱 큰 권력을 휘둘렀다. 상대적으로 한때 신적인 존재로 군림한 파라오의 권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고대 세계에 왕권의 쇠퇴는 곧 국력의 쇠퇴나 다름없었다. 실패한 종교개혁이 이집트의 약화를 초래한 것이다.

 

반면 이집트보다 역사적 전통에서 훨씬 뒤질뿐더러 원래부터 정복 국가로 출범한 히타이트는 모 아니면 도의 노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즉 정복에 나선 김에 오리엔트 세계의 통일을 이룬다면 강력한 통일 제국으로 승격되어 장기 집권이 보장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지역의 패자라는 지위도 유지하기 어려운 운명이었다. 카데시에서 이집트를 격파하지 못한 것은 이미 히타이트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이런 내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실은 그보다 더 큰 바깥의 문제가 두 나라를 괴롭히고 있었다. 바로 해상민족이라고 알려진 동부 지중해상의 고대 해적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만한 문화적 역량은 갖추지 못했으나 병든 사자쯤은 괴롭힐 수 있는 사나운 하이에나였다. 이집트는 기원전 12세기 제20왕조 때부터 이 하이에나들의 거센 침략을 받아 그렇잖아도 쇠락해가던 국력이 한층 급속도로 추락해갔다. 히타이트의 형편은 더 나빠서 기원전 1190년경에는 해적들에게 수도를 함락당할 정도였다. 결국 히타이트는 얼마 못 가서 멸망하고 말았다.

 

기원전 12세기에 당시 세계 최강국인 두 나라를 괴롭히고 에게 해와 동부 지중해를 주름잡은 이 정체불명의 해적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아직 역사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짐작은 가능하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기원 전 12세기 무렵 미케네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해상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것은 당시 문명의 오지인 그리스 측에서 보면 해상 진출이지만,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던 오리엔트 세계 측에서 보면 해적질이었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기원전 9세기~기원전 8세기)는 그 해적질 중 하나인 트로이 전쟁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여인인 헬레네를 빼앗아간 탓에 그리스의 영웅들이 응징하러 간 것으로 묘사했지만, 호메로스가 이집트나 아라비아 사람이었다면 과연 그렇게 해석했을까기원전 5세기의 기록인 투키디데스(Thucydides, 기원전 460년경~ 기원전 400년경)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이 점에 관한 추측을 얻을 수 있다. “연안이나 섬에 거주하고 있던 옛 헬라스(Hellas: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를 부른 이름)인들이나 바르바로이들은 배로 서로 활발히 왕래하게 되자, 자기 이익이나 피보호자의 부양을 위해 영향력이 강한 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해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들은 방벽이 없는 도시나 촌락을 침입해 약탈하고, 이것을 주된 생활의 수입원으로 삼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러한 약탈 행위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종의 명예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리스 해적 도자기에 그려진 오디세우스의 귀향 장면이다. 오디세우스가 돛대에 묶여 있고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호메로스의 시 오디세이아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실상 당시 동부 지중해 일대를 주름잡았던 그리스 해적들의 활약상이나 다름없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키클로페스나 세이렌 같은 괴물들은 그들과 싸운 다른 해적들이었을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동양사

수수께끼의 해적들

서양의 문자를 만든 페니키아

서양의 종교를 만든 헤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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