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끝의 통일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로마만이 아니었고 이탈리아만도 아니었다.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벗어난 기원전 5세기 무렵만 해도 로마에는 아직 경쟁자들이 많았다. 신생국 로마로서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식은 주변 민족들과 타협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로마는 이웃 라티움인들과 라티움 동맹을 맺고 최초의 지역 통합을 이루었다. 이 동맹은 로마인과 라티움인이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맺은 최초의 평화조약이자 불가침조약이자 상호보호조약이었을 뿐 아니라, 이후 로마의 대외 관계가 나아갈 기본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훗날 정복 국가로 알려지게 되는 로마였으나 출발 무렵에는 이렇게 평화조약을 외교 노선으로 삼았다.
평등한 조약으로 출발한 라티움 동맹 내에서 로마는 곧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라티움 동맹은 같은 처지의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맺은 의리 관계와 비슷했으므로 바깥에서 제법 몸집이 큰 아이가 공격해오면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기원전 390년 로마를 공격한 갈리아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예전에도 갈리아인들은 반도 북부의 포 강 유역까지 자주 침범했으나 보통은 국지적인 약탈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라티움 동맹으로 중부에서 제법 발언권을 얻은 로마가 그것마저 방어하려 하자 갈리아인은 로마의 기세를 꺾고자 했다.
갈리아가 침공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는 서둘러 군대를 꾸려 로마 북부의 알리아에서 맞섰다. 에트루리아를 물리치고 동맹을 주도한 로마로서는 최초의 본격적인 국제전인 만큼 긴장도 되었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한여름의 전투에서 로마는 갈리아의 켈트 전사들에게 대패했다. 도시는 철저히 유린되고 약탈과 방화가 잇달았다. 로마 광장의 12표법 청동판도 이때 불타 없어졌다(현재 전해지는 12표법의 내용은 나중에 재구성된 것이다)【갈리아는 로마를 최초로 정복한 이민족이었고, 이후 로마는 410년 서고트족에게 함락당하기까지 800년 동안 한 번도 이민족의 정복을 허용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사태는 로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참극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갈리아는 로마의 철천지원수가 되었으며, 나중에 이를 잊지 못한 로마의 카이사르는 갈리아에 대한 철저한 복수에 나서게 된다】.
로마를 위해 한 가지 다행스런 점은 갈리아가 로마를 지배하기로 마음먹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3년에 걸쳐 로마를 마음껏 유린한 뒤 갈리아는 로마를 직접 영토로 삼느니 배상금을 받고 철수하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 그 덕분에 로마는 자칫하면 역사에 명패도 올리지 못한 채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겼다【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시 로마의 사정은 기원전 3세기 말 중국 한 제국의 사정과 비슷한 데가 있다(로마와 한은 각기 서양과 동양의 고대적 기틀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위상이 비슷하다). 한은 건국 초기에 북방의 흉노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였다. 로마가 갈리아에 내준 배상금은 한의 조공에 해당한다. 로마는 갈리아를 야만족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는데, 한으로서도 역시 흉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의 ‘야만족’은 언어와 습속이 다르다는 뜻이 강했으나 로마의 ‘야만족’은 오늘날과 비슷한 의미였고 중국으로 치면 오랑캐에 해당한다(한은 흉노를 오랑캐라고 불렀다). 이 ‘야만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은 로마보다 중국이 약간 빨랐다. 한은 기원전 2세기 중반 흉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며, 로마는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벌에 성공한다】.
▲ 전우의 시신을 넘고 넘어 그리스와 달리 주변 민족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던 로마는 일찌감치 군사적 측면이 강조된 정복 국가로 출범했다. 그러나 갈리아는 초기 로마가 감당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기원전 4세기, 갈리아가 로마를 침공해왔을 무렵에 제작된 이 청동상은 로마 병사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전우의 시신을 나르는 모습이다.
그러나 로마의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갈리아에 치욕을 당하는 꼴을 본 라티움 동맹의 도시들은 로마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었다. 특히 캄파니아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삼니움인들은 기원전 350년 별도로 삼니움 동맹을 맺고 로마와 라티움 동맹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로마는 아직도 같은 체급에서는 챔피언이었다. 삼니움인들은 비록 전투에 능하고 기질이 억센 산악 민족이었으나 그리스에서 도입한 로마의 선진적 밀집대형 전술을 당해내지 못했다. 이 삼니움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당시 이탈리아 최대의 산업 중심지인 카푸아와 비옥한 곡창지대인 캄파니아, 그리고 중요한 무역항 네아폴리스(나폴리)를 얻는 ‘횡재’를 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로마가 전리품을 독차지하자 동맹시들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평화조약으로 출범한 라티움 동맹의 틀을 깨지 않기 위해 동맹시들은 우선 점잖게 재분배를 요구했다. 그러나 제 코가 석 자인 로마가 그 요구를 수용할 리는 만무했다. 결국 전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삼니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원전 340년에 로마는 또다시 동맹시들의 연합군을 맞아 3년 동안 힘든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로마의 힘은 이제 과거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2년이 지나자 전쟁 수행 능력을 잃은 동맹시들은 로마에 강화를 제안했다. 사실상의 항복인 셈이었다. 정치적 지도력을 확고히 한 로마 앞에는 다시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로마가 선택한 메뉴는 세 가지였다. 첫째, 적극 협력하는 도시들에는 완전한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 둘째, 끈질기게 저항하는 도시들은 요새를 파괴하고 정치 지도자들을 추방한다. 셋째, 이도 저도 아닌 중립 도시들에는 정치적 자치권만 부여한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의 패자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마무리만 남았다. 아직도 완전히 복속되지 않으려 하는 삼니움의 저항을 분쇄하는 것과 남쪽 끝자락의 마그나그라이키아를 접수하는 것이었다. 삼니움인들은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완강하게 버텼으나 기원전 295년에 센티눔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이때 갈리아인도 삼니움 측에 가담해 싸웠으므로 로마로서는 갈리아에 복수한 셈이다). 이제 반도 통일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냥 접수하면 될 줄 알았던 마그나그라이키아에서 예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굽 부분에 있는 항구도시 타렌툼은 로마를 새 주인으로 맞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옛 주인인 그리스의 품을 찾았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미 동맹시들이 로마에 강화를 요청하던 해(기원전 338년)에 필리포스의 마케도니아에 굴복한 터였다. 따라서 타렌툼의 도움 요청에 응답한 것은 그리스도, 마케도니아도 아닌 그리스 북서부에 있는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Pyrrhos, 기원전 319~기원전 272)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제2의 알렉산드로스를 꿈꾸던 야심가인 데다 평소에 타렌툼을 위대하고 부유한 도시라고 여기던 그이니, 타렌툼의 요청은 그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격이었다. 그는 원래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려 했으나, 이참에 목표를 서쪽으로 돌려 이탈리아 전체를 정복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로스가 이끄는 그리스 용병과 마케도니아 연합군은 스무 마리의 코끼리와 함께 타렌툼이 깔아놓은 레드카펫으로 왔다. 이탈리아 내의 여러 작은 민족만 상대해온 로마로서는 처음 맞는 헬레니즘 세계의 군대였다. 그러나 큰 싸움에서 이기면 큰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원전 275년, 양측은 베네벤툼에서 맞붙었다. 승부의 핵은 코끼리였다. 코끼리 전술이 장기인 피로스로서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로마인이 코끼리를 보고 놀란 것 못지않게 코끼리들도 로마의 밀집대형을 보고 놀랐다. 결국 로마군의 창에 부상을 당해 미쳐버린 코끼리가 거꾸로 그리스 병사들을 짓밟아 죽이면서 피로스의 야망은 꺾였다(피로스의 고향은 오늘날 알바니아에 해당하는데, 알바니아 사람들은 피로스를 아직도 고대사의 영웅으로 존경한다). 피로스가 물러간 뒤 로마는 타렌툼을 접수해 기원전 272년에 마침내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루었다.
▲ 코끼리 접시 전에도 코끼리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겠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피로스의 코끼리 부대에서 코끼리를 처음 구경했다. 그러니 그들이 혼비백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림은 그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접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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