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로마가 있기까지
늑대 우는 언덕에서
정상에 올랐으면 그다음에는 내려가는 게 원칙이다. 등산이나 경기 순환만이 아니라 역사도 마찬가지다. 헬레니즘 시대는 그리스 문명의 절정인 동시에 쇠퇴의 시작이었다. 페르시아 전쟁과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을 통해 그리스 문명은 그리스 본토를 벗어나 동부 지중해 전역에 퍼졌다. 비록 ‘사람들이 사는 땅’을 모두 아우르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그리스 문명은 완성되었다. 그것을 당시 또 하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던 지중해 서부 지역까지 포괄하는 진정한 유럽 문명의 뿌리로 키워내는 것은 그리스 문명의 몫이 아니었다. 그리스가 오리엔트 문명의 씨앗을 받아 그것을 능가하는 문명을 이루었듯이, 또 다른 청출어람(靑出於藍)이 그리스 서쪽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양 문명의 두 번째 뿌리인 로마였다.
로마가 건국된 것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의 일이다. 그런데 까마득한 옛날 치고는 너무 정확한 날짜가 아닌가 싶다. 사실 그렇다. 이 연대와 날짜는 나중에 로마가 지중해의 패자로 성장한 뒤에 정해진 것이다. 당시 여러 개의 연대와 날짜가 후보로 올랐으나 로마인들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을 공식적인 건국일로 선택했다. 실제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선택’한 것이므로 그 연대와 일자가 정확한 것일 수는 없다. 그냥 그 무렵에 테베레 강 유역 라티움의 한 언덕에서 로마가 시작되었다는 정도로 보면 된다(오늘날까지도 로마 시는 그 날짜를 공식적인 도시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다).
연대와 날짜를 정한 마당에 건국자도 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로마의 공식 건국자는 로물루스다. 쌍둥이 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갓난아기 때 산에 버려졌다. 형제를 거두어 기른 것은 사람이 아니라 늑대였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는 커서 늑대무리처럼 주도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다. 여기서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웠다. 레무스가 이겼다면 로마가 아니라 ‘레마’가 건국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로마는 늑대 우는 언덕에서 처음부터 피비린내를 풍기며 생겨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건국신화다. 그러나 모든 건국신화는 양면적이다. 즉 사실의 일부를 말해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사실의 일부를 은폐하는 측면도 있다. 로마의 건국신화는 무엇을 은폐하고 무엇을 드러낼까?
무릇 건국신화의 ‘속임수’는 그 이전에 아무도 살지 않았거나, 적어도 문명이 없었다는 것을 암암리에 전제한다는 데 있다. 늑대가 로물루스 형제를 길렀다는 전설은 곧 그 이전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원전 753년 이전에도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문명이 있었다. 나아가 이탈리아 북쪽, 기금의 서유럽을 이루는 프랑스와 독일 지역에도 역시 여러 민족과 문명이 있었다. 다만 그것들은 결국 로마 초기 역사에 통합되므로 로마사의 일부로서 고찰할 수밖에 없다. 역사란 늘 승리가의 기록이니까.
그럼 로마의 건국신화가 말해주는 사실은 무엇일까? 바로 기원건 753년 무렵부터 로마는 당시 그 부근에 존재하고 있던 여러 부족을 물리치고 ‘동네의 패자’로 우뚝 섰다는 사실이다. 로물루스가 골육상잔의 비극을 통해 로마를 세웠다는 신화는 그 다툼의 과정을 압축한 것일 터이다.
어쨌든 로마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로마는 ‘지역 유지’로서 첫발을 내디딘 정도일 뿐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명함을 내밀 만한 처지는 못 되었다.
▲ 건국신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늑대 젖을 먹고 있는 모습을 담은 기원전 5세기의 청동상이다. 로마의 건국자가 늑대의 것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는 여느 건국신화가 그렇듯이 로마가 독자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는 달리 이 청동상은 에트루리아의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어 에트루리아가 초기 로마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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