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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예식의 집단심리학적 특성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예식의 집단심리학적 특성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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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의 집단심리학적 특성

 

 

그러나 예를 정당화하려는 순자의 노력은 아주 현실주의적입니다. 그는 정치ㆍ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예를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집단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정당화하려고 시도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논증이므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요.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대답하기를, 아무런 이유도 없으니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면 재앙을 제거하려 하고, 하늘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내고, 점을 친 뒤에야 국가 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것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예를 통해 꾸미려는 것뿐이다.

雩而雨, 何也? : 無何也. 猶不雩而雨也. 日月食而救之, 天旱而雩, 卜筮然後決大事, 非以爲得求也以文之也.

우이우, 하야? : 무하야. 유불우이우야. 일월식이구지, 천한이우, 복서연후결대사, 비이위득구야이문지야.

 

그러므로 군자는 예식을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예식에 신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꾸미는 것으로 생각하면 길하지만, 신묘하다고 생각하면 흉하다. - 순자』 「천륜

故君子以爲文, 而百姓以爲神. 以爲文則吉, 以爲神則凶也.

고군자이위문, 이백성이위신. 이위문즉길, 이위신즉흉야.

 

 

기우제란 무엇인가요? 농경사회에서 비가 오지 않는 것처럼 비극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이때 제사를 지내 비가 오도록 하는 예식이 바로 기우제이지요. 과연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릴까요? 분명 말도 안 되는 미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순자도 이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우제라는 예식을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아가 전쟁 같은 큰 일을 앞두고 군주도 점을 친다고 말합니다.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점괘가 좋다 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분명 미신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순자는 군주의 점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먼저 기우제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연재해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또 지금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언젠가 올 거라고 묵묵히 기다리지도 못합니다. 바로 이럴 때 기우제를 지내면, 모종의 착각과 위안을 얻게 됩니다. 만약 기우제를 지냈을 때 요행히 비가 내린다면, 인간은 자신이 비가 오도록 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완전히 절망하기보다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될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비가 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마치 자신의 노력과 정성 때문이라는 전도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고 있으면, 인간의 절망은 나름대로 위로받을 수 있겠지요. 순자가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기우제가 미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는 정신적 위로의 힘 때문에 기우제 지내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다음으로, 전쟁의 결과에 대해 점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동원되는 백성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지요. 만약 군주가 점을 쳐서 전쟁에서 길하다는 점괘를 받는다면, 백성들은 아마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군주는 점을 반대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군주가 보았을 때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전쟁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대부분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때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점을 쳐본 뒤 점괘가 흉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겠지요.

 

지금 순자는 예를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집단심리학적 기제로 긍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자는 예식을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성들은 예식에 신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故君子以爲文, 而百姓以爲神]”고 말했던 것입니다. 비록 통치자 입장에서 예의 효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순자의 생각은 지금의 입장에서 보아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점이나 미신을 믿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요. 이렇듯 동양의 철학자들 가운데 순자처럼 예식이 가진 집단심리학적 특성을 엄밀하게 통찰했던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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