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유학자의 운명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했습니다. 순자는 공자가 강조했던 예의 외재성과 객관성을 회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순자가 본성과 인위를 나눠서 본 관점이지요. 인간의 본성은 자연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문명 상태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자 이후 유학의 역사에서 맹자가 주류 유학자로 등장하면서, 순자의 철학적 통찰력은 어둠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신의 내면에 선한 본성이 있어서 언제든지 노력만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낙관적 주장이 지식인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반면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을 혐오하는 자기 파괴적인 주장으로 이해되었고, 심지어 저주받게 되었습니다. 순자 인성론의 핵심적인 개념이었던 ‘위(僞)’라는 글자의 운명이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능동적 실천을 뜻하던 글자가 이제 와서는 ‘거짓’이나 ‘허위’를 뜻하는 글자로 변질되었으니까요. 맹자는 공자의 유학 사상을 변호하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맹자의 성선설은 공자에게는 매우 낯선 요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히려 극기복례(克己復禮)해야만 인자가 된다는 것이 공자의 핵심 견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공자는 인간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점에서 순자는 분명 공자를 충실하게 따랐던 유학자라고 말할 수 있지요. 나아가 그는 공자가 하지 못했던 것, 다시 말해 예를 정당화하려고 다각도로 모색했습니다. 정치ㆍ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정당화하기도 하고, 심지어 집단심리학적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를 정당화하기도 했습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예라는 규범적 질서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마저도 정당화하는 이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외적인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성악설의 핵심 주제였으니까요. 이것은 결국 예(禮)나 국가와 같은 외적인 강제력을 긍정하는 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사(李斯, ?~BC 208)나 한비자(韓非子, BC 280년경~BC 233)와 같은 법가(法家) 사상가들이 그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지요. 이사나 한비자가 자신의 스승 순자와 다른 지점은 단지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것은 두 제자가 결코 공자의 유학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이는 물론, 그들이 공자나 순자가 강조했던 예를 타당한 사회적 규범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예의 자리를 강력한 실정법, 즉 법으로 대치했습니다. 아마 순자의 유학 사상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가, 두 제자의 악명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라는 진나라를 대신하여 제국이 된 왕조입니다. 알다시피 진나라의 이념적 토대는 이사나 한비자가 주창한 법가 사상이었지요. 진나라를 붕괴시킨 한나라는 진나라 멸망의 원인을 법가 사상에서 찾았습니다. 나아가 한나라는 통치의 이념적 토대를 유학 사상으로 결정합니다. 결국 이런 분위기에서 순자는 그의 두 제자와 함께 한 묶음으로 분류되어 저주받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맹자를 높이고 순자를 누르던 관례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과거 역사에서 순자의 가치를 알아주던 유학자가 한 명도 출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순자를 재발견한 유학자는 중국의 유학자도 조선의 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에서 순자가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순자를 복원시킨 사람은 바로 오규 소라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도 잠시일 뿐, 여전히 순자는 대개의 경우 오해와 망각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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