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진사이의 선견지명
진사이가 타자에 대한 인식에 눈뜨게 된 계기를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이야기만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대대로 교토에서 상인으로 지내온 진사이의 집안에서는 그가 주자학을 공부하려는 것을 보고 상인이 되지 않으려면 차라리 실용적인 의사가 되라고 강권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사이는 끝까지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고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고,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를 사랑함이 더욱 깊은 사람은 나를 공격하는 것에 더욱 힘쓴다. 그 고초의 상황은 마치 죄인이 심문대에 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고학선생문집(古學先生文集)』 1권 「송편강종순환류천서(送片岡宗純還柳川序)」.”
마치 심문대에 올라 죄를 반성해야 하는 죄인처럼, 진사이는 학문에 정진하리라는 결심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절절하고 솔직한 회고입니까? 진사이는 자신의 경험에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과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까운 친척들은 모두 나를 아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니, 나의 고유한 욕망과 판단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갈등 속에서 진사이는 공자의 충서(忠恕)를 내 마음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공부로 재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진정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만 합니다. 주희가 말했듯이,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상대에게 밀고 나가면 이것은 결국 상대방을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상대를 사랑한다기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야겠지요. 진사이가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고, 상대의 몸을 내 몸으로 삼으라고 말한 것은 이런 점에서 비춰볼 때 대단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학파의 인물들을 다룬 최근의 일본 연구자들은 이토 진사이야말로 유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타자성’의 문제를 진지하게 도입한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현대 일본 사상계의 대표 학자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도 「이토 진사이론(伊藤仁齋論)」이라는 글에서 진사이의 독창적인 사유에 대해 다룰 정도였으니까요. 그에 따르면, 진사이는 인간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인간의 마음이란 서로에게 낯선 타자적일 수밖에 없음을 직시했다고 합니다. 이런 평가는 모두 ‘서(恕)’의 공부는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서 들어주는 것이라고 본 진사이의 사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상대가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타자임을 인정했다는 면에서, 진사이의 사유를 타자 또는 차이를 탐구하는 현대 철학의 작업에 곧바로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그만큼 1600년대를 살았던 진사이의 사유는 놀라운 선견지명을 보여준 것이지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조선 후기의 몇몇 실학자들은 일본 고학파의 창시자인 진사이의 관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게 됩니다. 특히 이 문제에서도 정약용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약용이 어떻게 진사이의 사상을 흡수했는지의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먼저 일본 고학파의 또 다른 계열인 오규 소라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같은 고학파이지만 소라이는 진사이를 비판하면서 고문사학(古文辭學)이라는 이질적인 학풍을 조성했습니다. 그는 진사이의 관점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주자학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려고 애를 썼지요. 다시 말해, 주자학 비판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 셈입니다. 그럼 고문사학파인 오규 소라이는 어떻게 공자와 맹자를 이해했고, 중국 고대의 경전들을 재해석했는지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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