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다
인심도심(人心道心)의 공부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정약용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무릇 하나의 생각이 발동하면 곧바로 두려워하고 맹렬히 반성하면서 말한다. “이 생각은 공적인 천리(天理)에서 나온 것인가, 사적인 인욕(人欲)에서 나온 것인가, 이것은 도심(道心)인가, 인심(人心)인가?” 세밀하고 절실하게 연구하여 이것이 과연 공적인 천리라면 배양하고 확충하며, 혹여 사사로운 인욕에서 나왔다면 막고 꺾어서 극복한다. 군자가 입술이 타고 혀가 닳도록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의 변론을 열심히 전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퇴계는 일생 동안 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기르는 공부에 힘썼다. 그러므로 이발과 기발을 나누어 말하면서 이 구분에 밝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학자가 이런 뜻을 살펴 깊이 체득한다면 퇴계의 충실한 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문집(詩文集)』 「이발기발변이(理發氣發辨二)」 12:18
凡有一念之發 卽已惕然猛省曰 是念發於天理之公乎 發於人欲之私乎 是道心乎 是人心乎 密切究推 是果天理之公則培之養之 擴而充之 而或出於人欲之私則遏之折之 克而復之 君子之焦唇敝舌而慥慥乎理發氣發之辯者 正爲是也 苟知其所由發而已 則辨之何爲哉 退溪一生用力於治心養性之功 故分言其理發氣發 而唯恐其不明 學者察此意而深體之 則斯退溪之忠徒也
범유일념지발 즉이척연맹성왈 시념발어천리지공호 발어인욕지사호 시도심호 시인심호 밀절구추 시과천리지공즉배지양지 확이충지 이혹출어인욕지사즉알지절지 극이복지군자지초진폐설이조조호리발기발지변자 정위시야 구지기소유발이이 즉변지하위재 퇴계일생용력어치심양성지공 고분언기리발기발 이유공기불명 학자찰차의이심체지 즉사퇴계지충도야
이 글은 정약용이 40세 이후에 쓴 「이발(理發)과 기발(氣發)에 대한 논변」의 일부입니다. 이(理)가 발동하기도 하고 기(氣)가 발동하기도 한다고 본 관점은 이황의 고유한 입장이었지요. 젊었을 때 정약용은 퇴계 선생의 이기(理氣)에 관한 주장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율곡 선생의 이기론을 더 좋아했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입장이 조금씩 바뀝니다. 퇴계와 율곡을 함께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다시 퇴계의 이발기발설(理發氣發說)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정약용이 퇴계 선생의 이발(理發)을 도심의 발동으로, 그리고 기발(氣發)을 인심의 발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처음에는 선배 유학자들이 이기를 논한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정약용은 이제 입장을 바꿔서 그들의 속내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약용은 주희의 학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주자학이 지배한 조선시대의 전통 학문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정약용은 인간에게는 인심과 도심의 두 마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도심의 마음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모든 행동들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윤리적인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마음을 정약용은 우리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본성과 주희가 말한 본성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정약용의 본성론은 성기호설(性嗜好說)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본성을 마치 구체적인 기호나 욕망 작용과 같이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정약용은 본성이 아무런 힘도 없이 죽은 사물처럼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고 본 주자학적 관점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도덕적 욕망을 가진, 자신만의 본성 개념을 새롭게 정의 내립니다. 그에게 본성이란 마치 우리가 배가 고프면 먹고 싶듯이,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선한 행동을 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욕망으로 작동하는 것이었지요.
정약용은 이런 본성이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천명(天命)이라고도 말합니다. 천명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명령을 의미합니다. 그에 따르면, 천명이 있었기에 우리는 선천적인 본성을 타고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선천적으로 선을 행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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