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알고 선을 실천하려는 윤리적 욕망
정약용은 타고난 본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마음 상태를 곧 도심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 행동이란 이 도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지요.
성(性)이 드러난 것을 도심이라고 한다. 도심은 항상 선을 하고자 하고, 또한 선을 선택할 수 있다. 한결같이 도심이 하고자 하는 바를 들으면 이것을 성을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불의(不義)한 음식이 앞에 있을 때 입과 배의 욕구가 넘쳐나겠지만 마음이 고하길 “먹지 마라! 이것은 불의한 음식이다”라고 하면, 나는 그 고함에 따라서 음식을 물리치고 먹지 않는다. 이것을 성을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중용자잠(中庸自箴)』 1:3
性之所發 謂之道心 道心常欲爲善 又能擇善 一聽道心之所欲爲 循其欲 玆之謂率性 率性者 循天命也
성지소발 위지도심 도심상욕위선 우능택선 일청도심지소욕위 순기욕 자지위솔성 솔성자 순천명야
사실 천명이라는 표현은 중국 고대 유학 경전에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천명은 간혹 인격적인 하늘, 즉 상제(上帝)의 명령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지만, 인간이 부여받은 선천적인 본성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정약용 역시 인간의 윤리적 본성을 아예 천명지성(天命之性)이라고 불렀지요. 인간에게는 이러한 천명지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이기고 선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물론이려니와 퇴계 이황, 그리고 주희까지도 이런 입장을 기본적으로 공유했습니다. 따라서 천명으로부터 받은 선천적 본성에 대한 강한 신념은, 전통 유학 사상에서 정약용이 배웠던 중요한 관점이라고 볼 수 있지요. 더구나 앞의 유학 사상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천적 본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추론 능력 또는 사유 능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주희와 이황 그리고 정약용에게 기본적으로 본성이란, 선(善)을 알고 선을 행하려는 윤리적 욕망을 의미했습니다. 특히 정약용은 우리에게 천명지성이 있기에 평생동안 작은 선행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도덕적 생활에서 선천적 본성이 없어서는 안 될 토대라고 본 것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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