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구려는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며 새 패러다임을 만들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건 고구려는 왜 중원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냐는 점이다. 이 문제가 풀리질 않으니,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긴 것이 자꾸 후퇴처럼 보인다.
▲ 미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파헤쳐져 누가 보면 그냥 돌이 난자하게 엉클어진 곳인 줄 알겠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 패러다임을 완성하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고구려가 중원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15대 왕인 미천왕美川王 무덤의 도굴 사건이었다고 얘기해준다. 미천왕 때 고구려는 옆 나라인 모용선비와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 두 나라의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서로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미천왕은 죽었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잇게 된다.
하지만 미천왕때와는 달리 백제엔 불세출의 인물인 근초고왕이 직위하면서 고구려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 남쪽엔 백제란 나라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서쪽에선 모용선비가 시비를 걸어오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급기야 모용선비는 미천왕의 무덤까지 진격하여 무덤을 파헤쳐 시체까지 강탈해가는 만용을 저지르고 만다. 바로 이 순간을 도올 선생은 ‘고구려의 역사가 중원과 결별하게 되는 갈림길’로 정의하며,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하고는 상대도 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굳힌 순간이라 표현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흔히 쓴다. 미천왕 무덤의 도굴 사건은 가슴 아픈 일이며, 고구려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때 울분을 느낀 고구려가 다시 재기를 하면서 광개토대왕 때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만약 이때까지도 고구려가 중원으로 진출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면, 중원으로 쳐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미천왕 이후로 중원중심주의를 버렸기에 광개토대왕은 동북지역과 한반도 이북지역까지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젖혔고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했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만약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지 않고 국내성에서 그 역사가 끝났다고 한다면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고구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며 한 시대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다.
▲ 고구려 패러다임은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고구려처럼 우리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어찌 보면 지금 한국도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투표로 뽑힌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그 뒤에 숨은 세력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 탓에 한국은 완벽히 공동체가 무너졌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으며 통일의 비전보다는 기득권 유지가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이 때문에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이면 광화문에서 함께 모여 집회를 열며 광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이것만 보고 있으면 한국은 지금 유사 이래 엄청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12월 3일에 광화문 일대에서만 170만명이 모였다. 비폭력 시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질의응답 시간에도 한 학생은 “엊그제는 한국과 일본이 군사보호협정까지 맺었습니다. 선생님의 역사적인 감으로 볼 때 지금의 현 시국은 어떻습니까?”라고 불안에 가득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도올 선생은 “지금 우리 역사가 혼돈과 무질서로 가는 게 아니라, 질서 있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중이예요.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명박이 몇 십조를 해먹어도 아무도 항의를 안 했잖아요. 그런 사기가 어딨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안 속았고 그냥 안 넘어갔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감사해야 하고, 이럴 때마다 우리 역사는 확실하게 진보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건 고구려가 미천왕 무덤의 도굴 사건을 슬기롭게 넘기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치를 세워갔듯이, 한국도 이번 사건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며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이것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의 관람기를 마치고, 다음 편엔 도올 선생과 진행한 질의응답을 정리하여 올리도록 하겠다. 사족이지만 질의응답 시간은 청년의 열정을 지닌 도올 선생의 에너지에 좌중이 압도되며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감격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다음 편에선 도올 선생과의 대화를 정리하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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