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우시온
결국 니케아 종교회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알렉산더 주교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흘러갔고, 아들도 아버지와 똑같은 신격의 존재라는 신경(信經)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실체이다’(homoousion to Patri)라는 ‘호모우시온’(同體)의 니케아신경(the Creed of Nicaea)은 그후 끊임없는 반박과 수정을 거쳐야 했지만 끝내 삼위일체론(Trinity)의 정통이론이 되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강압적 정책으로 아리우스파의 공식적 반박은 자취를 감추었으나, 새롭게 유럽역사에 등장한 게르만 통치자들의 입교자 중에 아리우스파가 많아 그 영향력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오늘날에도 16세기의 합리적 종교개혁파와 매우 리버럴한 칼비니스트(Calvinist)에게서 유래한 영국ㆍ미국의 유니태리아니즘(Unitarianism)은 아리아니즘의 한 지속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론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내가 공부하던 뉴잉글랜드지역의 유니태리안 교회에 가보면, 성경과 함께 『논어』와 불경이 같이 꽂혀있다. 그 교회 목사님이나 신도들은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이성의 무제약적 활약을 극구 권장한다. 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탁월한 에세이스트며 강연자였던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주홍글씨』를 쓴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시민불복종 권리를 외친 써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등 미국의 정신사를 리드했던 트랜센덴탈리즘(New England Transcendentalism)의 거장들이 모두 이 유니태리아니즘과 직ㆍ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아주 극성적인 아리아니즘의 당대의 또 한 형태로서는 펜실바니아의 알레게니에서 태어난 찰스 테이즈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의 조그만 성경모임(the 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 1872)으로부터 출발한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이다. 그들은 자신을 ‘예수의 증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절대ㆍ유일ㆍ보편의 지고한 신은 오직 ‘여호와’(Jehovah)일 뿐이며 예수는 여호와의 피조물일 뿐이며 사람일 뿐이며 그는 대속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는 죽어 영이 되어 이 세계 속에 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에게 신성을 허락하지 않는 측면에서 이들은 아리안파로 분류된다. 따라서 그들은 ‘기독교인,’ 즉 크리스챤(Christians)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증인’(Witness)이라고만 부른다. 그들은 이 세계가 완벽하게 사탄(Satan)의 지배하에 있다고 믿는 측면에서는 역사적으로 영지주의와 상통한다. 따라서 신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사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들은 임박한 예수의 재림을 믿는다. 럿셀은 1874년을 보이지 않는 예수의 귀환의 해로 설정하다가 1914년을 예수 재림의 해(the year of Christs Second Coming)로 지정하였다. 1914년에 아무런 휴거도 일어나지 않자 계속 연기하였는데, 요즈음은 막연하게 말세의 표징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언사들을 동원하고 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여호와에게 영생을 허락받아 예수와 함께 천국화된 지상을 지배할 자는 144,000명의 소수로 지정되어 있다(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의 주장: 12지파라는 숫자관념에서 비롯된 숫자), 이들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속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상의 어떠한 국가에도 충성을 표시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내셔날리즘이나 애국심이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국기에 배례하거나 병역을 복무하거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수혈도 거부하고 타 종교와의 교제도 불허하며, 성직자나 일체의 조직타이틀을 허락하지 않는다. 회중만 있고 목사는 없으며 일체의 예배용 이미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철저한 신앙신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박해를 받고 순교자를 내었고 민권운동자들의 동조를 얻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그들은 민권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거나 민권을 통하여 지상의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신권(theocracy)에 의한 심판의 준비단계로서 자신의 행동양식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여호와증인의 신념체계를 보면 초대교회의 행태에 관하여 많은 것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지옥과도 같았던 1ㆍ2차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그들이 지켰던 신념의 순수성에 관해서는 수긍이 되는 일면도 있지만 아리우스의 신념체계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그렇게 폐쇄적인 말세론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다 지성적이고 여유롭고 합리적이면서도 매우 신비적인 알렉산드리아의 분위기에 부합되는 네오플라토니즘적인 사상이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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