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주의, 재림주의, 금욕주의의 야만성
실제로 동방교회의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페푸자로 모여들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금지시켰고(독신생활), 육식을 폐지했으며, 세상의 모든 것과 절연하고 몸을 정화시킬 것을 명했으며, 그리고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정교하게 단식하는 법식을 가르쳤다. 그리고 성찬식에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한돌 짜리 아이를 희생으로 썼다. 1살 아기의 몸에 수없이 바늘을 찔러 거기에서 나오는 핏방울들을 모아 빵과 함께 먹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이 예수의 로고스(Logos)가 성찬 참여자의 몸에 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순교를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것으로 장려했고, 몬타누스 자신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매달아 자살했다. 세 지도자 중에서 막시밀라라는 여자 예언자가 마지막으로 179년에 죽었는데 다음과 같은 신탁의 예언을 남겼다.
나 이후로는 더 이상의 선지자가 없을 것이며, 오로지 이 세상의 끝날만 있을 것이다.
After me there will be no further prophet but only the end.
그러나 끝날은 오지 않았다. 몬타니즘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에까지도 5세기까지 강력한 세력으로 존속했다. 몬타니즘은 광렬한 성령주의, 끊임없이 재발하는 재림주의, 그리고 강렬한 금욕주의라고 하는 기독교의 감출 수 없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야만성의 영원한 상징이다.
몬타니즘의 부작용으로 정통로마교회에서는 요한복음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났다. 몬타누스의 모든 광란이 로고스 기독론의 문자적 해석으로 일어난 것이며, 그들의 광포한 성령주의가 요한복음이 말하는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 성령)의 파견에 대한 예수의 예언의 실현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보혜사 문제에 관해서는 『요한복음강해』 389, 402, 407을 볼 것.)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반몬타누스주의자들(anti-Montanists)은 로고스를 말하는 복음을 거부했다. 3세기초의 정통로마교회 장로인 가이우스(Gaius)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영지주의자들의 작품이라고 배척했다. 정통주의 신학자 이레나에우스(Irenaeus, 120/140~200/203 c.)도 그의 유명한 작품, 『반이단론(Adversus haereses, Against Heresiess)』(180년경 작품) 속에서 몬타니즘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너무 과격하여 요한복음까지 배척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하여튼 요한복음이 결국 영적인 복음(euanggelion pneumatikon)으로서 이레나에우스, 테르툴리아누스, 클레멘트 등 주요한 교부들의 노력에 의하여 정경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긴 했지만, 그 복음 자체의 수난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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