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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이 없으면 이단도 없다
우선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과연 정통(orthodoxy)과 이단(heresy)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이단이란 옳다고 인정받는 종교ㆍ사상ㆍ학설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옳다고 인정받는 이론 이 과연 무엇인지를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이단도 규정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통이 없으면 이단도 없고, 이단이 없으면 정통도 없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의 당시 라틴어는 ‘하에레시스’(haeresis) 그것은 ‘선택’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ㆍ로마시대의 ‘이단’이라는 것은 ‘심사숙고한 끝에 선택한 설’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통해석에서 벗어나는 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이냐? 이 질문은 단지 초대 교회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던져져야 한다. 과연 정통과 이단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기독교의 경우, 이 질문에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첫째,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동안 팔레스타인 사역을 통하여 순결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남기어 놓으셨다.
둘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간?) 순결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남기어 놓으셨다.
셋째, 예수님께서 마지막 승천하실 때에 사도들에게 이 세계를 분할하여 책임지우고 그들에게 순결한 복음을 위탁하셨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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