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통은 과거의 이단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의 기나긴 이론투쟁을 논의했는데, 기번의 아타나시우스에 관한 기술은 매우 정중하다. 그리고 너무 일방적으로 아리우스파에 대한 폄하의 붓길에 하등의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20년 가까운 기나긴 세월을 자신의 종교적 이념 때문에 정치적 박해를 받았어야 했던 성자적 인품에 기번은 한없는 존경의 염을 표시하고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분명 ‘온갖 영욕과 성쇠를 겪으면서도 결코 동료들의 신임과 반대파의 존경을 잃는 법이 없었던’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른다(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409).
그러나 우리는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의 논쟁을 단순히 예수가 사람이냐 신이냐? 하는 주제에 대한 이론적 대결로 파악하면 곤란하다. 예수는 일차적으로 사람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아리우스의 주장은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당대 동방교회 전체의 주류였으며 당대 기독교사상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는 상식이었다. 학자들이 아리아니즘과 그노스티시즘을 직접 연결해서 분석하는 논의를 접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리아니즘도 영지주의라는 거대한 사상 운동의 한 갈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영지주의는 당대 동방교회의 대세였다. 지금 우리의 교회사적 상식으로 보면 당연히 아리우스가 이단이고 아타나시우스가 정통인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당대의 상식으로는 아타나시우스야말로 이단이고 아리우스가 정통이었다. 정통이 이단을 내모는 데 그토록 20년 동안이나 처절하게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료해(了解)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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