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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 - 내용적으로는 기준이 없다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3장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까지 - 내용적으로는 기준이 없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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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적으로는 기준이 없다

 

 

결국 초대교회에서 정통을 얘기하고 이단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 말씀과 사도들의 권능을 들먹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예수님의 말씀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이며, 사도들이 전한 말씀의 순결한 내용이란 무엇인가를 아무도 확정지을 수 있는 절대적 근거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지금 한국의 독실한 기독교인은 누구라도 그 절대적 근거는 성서가 아닌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은 초대교회에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성경이 근원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27서정경도 존재하지 않았고, 복음서의 권위도 절대적이 아니었으며, 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동일한 자격을 지니는 성서문헌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문헌은 모두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필사한 것이기 때문에 같은 제목의 책이라도 필사본마다 심각하게 달랐다. 필사라는 것이 대개 낭독하는 것을 옮겨적은 것이었기 때문에 필사하는 사람의 인식구조에 따라 제각기 다른 단어나 이디엄이 선택된다. 그리고 첨삭이 아주 자유로웠다. 통일된 스탠다드 텍스트(Standard Text)라는 것은 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음속에 꼭 새겨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정경(正經)이 없는 상태에서는 위경(僞經)도 외경(外經)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27서정경은 AD 367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기독교에 대한 개념 자체를 혁명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통이란 무엇이고 이단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에도 이미 거짓 그리스도들이 있고,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13:22). ‘거짓 형제(고후 11:26, 2:4)’ ‘거짓 사도(고후 11:13)’ ‘거짓 선생 (벧후 2:1)’, ‘거짓말(5:11)’ 등 희랍어로 프슈도’(pseudo)를 접두어로 해서 이루어지는 많은 표현들이 현재 성서에는 존하고 있지만 이것 자체가 이미 초대교회 내에서 정통과 이단을 가리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할 뿐, 이런 말이 있다고 해서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수학문제라면 정ㆍ오를 가릴 수 있겠지만, 신앙문제에 있어서 정ㆍ오를 가리기는 참으로 난감한 것이다. 무엇이 참 신앙(true belief)이고, 무엇이 거짓 신앙(false belief)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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