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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4장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 아타나시우스 이후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4장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 아타나시우스 이후

건방진방랑자 2022. 3. 4.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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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

 

 

아타나시우스 이후

 

 

우선 이 기구한 운명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만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리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가 권위가 있다고 해도 그가 부활절에서 발한 메시지 하나로 전 로마기독교세계가 27서성경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기실 아타나시우스는 단지 목록만을 확정했을 뿐이다. 그는 평생의 에너지를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데 다 써버렸기 때문에 그의 저작도 이단에 대한 아폴로지apology, 변호)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엄밀한 서지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성서라는 텍스트를 크리틱(Critique, 비평)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질 않았다. 그는 27서정경을 물리적으로 만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27서를 확정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서지학적 안목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선정한 27서의 수준이 타 경전에 비해 정경 속에 편집될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문헌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단지 요한계시록이 편입된 것은 향후 1700년의 인류사를 위하여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이지만 요한계시록만 해도 이단과 배교에 대한 위협적 묵시로 가득 차 있어 이단과 배교와 평생을 싸워온 아타나시우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문헌이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에 대한 현세적ㆍ실존적 해석을 거부하는 모든 무지한 성령파들의 몽매한 영감의 원천으로 끊임없는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희랍교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27서를 발표했을 때도 요한계시록만은 사도저작성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정경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결하고 있으므로 정경에서 빼버려야 한다고 반박성명을 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리아교회들은 5세기말까지 디아테사론을 계속 선호했다. 그리고 시리아지역에서는 에데사의 주교(bishop of Edessa)인 라불라(Rabbula)가 만들었다고 하는 22서짜리 정경이 쓰였는데 이것을 보통 페쉬타(Peshitta)라고 부른다. 페쉬타에는 베드로후서, 요한2, 요한3, 유다서, 요한계시록이 빠져있다.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1세기 초대교회로부터 매우 주류적 감각을 지니고 내려온 뼈대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상기의 5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보다 합리적 결단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67세기에 수정판으로 등장한 필록세니안 판(the Philoxenian version)과 하르클리안 판(the Harklian version)부터는 동방희랍교회ㆍ라틴서방교회에서 사용하는 27서 체제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일차적으로 성서학자요 언어학자였던 말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정경의 기준을 사도저작성오직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was Christum treibet)이라는 두 항목 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기준에서 볼 때,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정경의 자격이 없다고 규탄했다. 그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을 때 이 4서를 빼버렸다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성서개념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루터는 전통의 하중에 굴복하고 이 4서를 그냥 신약의 말미에 덧붙였다. 내가 지금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27서성서의 목록을 제시했다 할지라도 27서체제는 인류사를 통하여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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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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