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당하는 팔레스타인 농부와 예수
예수의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그에게도 세속적 가치에 대한 부정이 있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현세종교로서만 생각하고 교회를 현세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친교의 장, 그러니까 일종의 소셜클럽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초기기독교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마태복음 19장에 실려있는 유대 계명을 잘 지키는 어느 청년과 예수의 유명한 대화를 대부분의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마 19:21~22)
지금 이러한 성경구절을 놓고 교회에서는 추상적인 해석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교회 목사님들 입장에서 본다면 부자신도들의 존재가 조직운영상 매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강요하면 교회가 빈한해져서 교회공동체 성립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 정황으로 볼 때는 매우 리얼한 말씀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팔레스타인은 농경사회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라는 것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의 일부로서 농경이 가능한 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도 농부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였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국가에서 부과하는 세금 이외로, 십일조(the tithes)라는 종교적 조세가 있었다. 이 십일조는 제사장들, 성전, 그리고 레위파 성전 스탭들, 그리고 명목상의 빈한층구제사업을 지원하는 비용으로 쓰였다. 이것만 해도 이 명목 저 명목 다 합치면 소출의 20%를 거두어갔다. 그런데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로마조세제도가 이 위에 가중하여 부과되었다. 토지세 1%, 소출세 12.5%, 그리고 다양한 공물, 관세, 통행세를 다 합치면 약 35%가 되었다. 게다가 로마관청은 이것을 직접 거두기가 힘드니까, 지역마다 부유 농민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수세농민’(tax farmers)제도를 만들어 그들을 통해 거두어갔다. 이들은 항상 덧붙여 받는 특권이 있어 그 차액을 착취했다. 이것을 다 합치면 소출의 60% 이상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은 강우량이 적어 비옥하질 못하다. 우리나라의 김제평야나 전군가도나 풍산뜰 같은 너른 들을 보기 어렵다.
고려조에도 자작농의 경우 국가에게 소출 10%의 수조권(收租權)이 있었다. 그런데 국가는 이 수조권을 녹봉개념으로 고급관리들에게 넘겨주었다. 물론 국가는 한 관리가 임기가 끝나면 그 수조권을 다른 관리에게 넘긴다. 그러나 소출의 10% 세금을 받아먹던 관리집안에서는 대대로 그 수조권을 클레임(claim)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역사가 흐르다보면 한 땅에 주인이 7, 8명이 생긴다. 농민은 자기 땅을 가지고 죽으라고 농사지어봐야 심할 때는 그 귀한 싸락의 90%를 다 빼앗기고 만다.
이 토지겸병과 차경제(借耕制)의 불합리성을 근원적으로 혁파하여 계민수전(計民授田)의 균산주의(均産主義)를 실천하고자 한 것이 고려말 신흥유생들의 움직임이었고 그 열기를 역성혁명으로 집약시킨 것이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정도전과 같은 정치혁명의 길을 거부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막 12:17, 마 22:21, 눅 20:25)라고 말함으로써 로마조세거부운동에 정치적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따르려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가진 재산(땅)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주라! 그래야 나를 따를 자격이 있다”고 외쳤던 것이다. 예수는 철저히 조세제도의 착취에 시달려 신음하던 농민, 그래서 땅 잃고 부랑하는 천민들과 운명을 같이 한 사람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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