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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탑중심의 가람배치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탑중심의 가람배치

건방진방랑자 2022. 3. 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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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중심의 가람배치

 

 

속리산 법주사에 가서 팔상전 5층목탑을 보면서 누가 산치대탑 스투파를 연상할 것인가? 팔상전 5층누각 꼭대기를 잘 살펴보면 그 정수리에 노반(露盤)이 있고 그 위에 복발(覆鉢)이 있으며 그 위에 보륜(寶輪)의 장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 꼭대기의 눈꼽만한 장식품들이 산치대탑같은 스투파가 퇴화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왼쪽 사진이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인데 이것이 곧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이다. 이 팔상전을 미루어 황룡사 9층탑의 모습을 알 수 있고, 황룡사 9층탑을 미루어 백제 미륵사지의 석탑의 원형인 9층 목탑의 구조를 알 수 있다.

 

 

황룡사(皇龍寺)의 가람배치를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9층목탑이 중심이고 그 위로 동()ㆍ서(西)ㆍ중()의 세 금당(金堂)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인들이 가서 지었다는 일본 최고(最古)의 절인 아스카데라(飛鳥寺)아스카데라의 현재의 절 이름은 호오코오지(法興寺)이다.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588년부터 609년에 걸쳐, 백제인들의 도움으로 건립되었다고 전하여지는 일본 최고(最古)의 절이다. 1956~57년의 조직적인 발굴에 의하여 가람배치가 명료하게 드러났는데 탑()을 중심으로 동()ㆍ서(西)ㆍ북()의 삼방(三方)에 금당(金堂)이 자리잡고 있다. 중금당(中金堂)과 탑()의 배치가 종적인 동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황룡사(皇龍寺)의 배치와 일치된다. 그러나 아스카데라의 배치는 황룡사에 최소한 1세기 이상을 앞서는 고구려 청암리(淸巖里)사지의 배치와 일치하므로 고구려의 영향권에서 태어난 사찰로 간주되지만, 백제공인들의 참여는 일본서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시되는 것이다. 기본설계는 고구려설계이며 와당 등 실제건축내용물은 백제의 영향이 뚜렷하다. 일본이라는 신세계에 있어서는 백제인과 고구려인의 협업체계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청암리사지의 절은 문자왕(文咨王) (497) 창건된 금강사(金剛寺)로 추정되고 있다. 윤장섭(尹張燮), 한국건축사(韓國建築史)(서울 : 東明社, 1994), p.58.13금당배치의 발전적 형태로 간주되는 것이다.

 

아스카데라의 13금당 배치는 그보다 약 1세기 먼저 조성된 고구려의 금강사(金剛寺) 사지인 청암리(淸岩里) 사지(평양 동북방 3Km, 대동강 북안)의 배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아스카데라의 규모에 비하면 청암리 사지의 규모가 더 크다. 그리고 청암리 사지의 목탑은 8각형인데 반하여 아스카데라의 목탑은 4각형으로 그 규모도 축소된 것이다. 청암리사지의 탑과 3금당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고구려 청암리사지(금강사), 일본 아스카데라, 신라 황룡사(皇龍寺), 모두 1목탑3금당 배치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탑중심의 가람배치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금당    
           
금당   목탑   금당
   

<고구려 청암리사지>

 

    금당    
         
금당   목탑   금당

 

<일본 아스카데라>

 

금당   금당   금당
         
    목탑    

 

<황룡사>

 

 

 황룡사 복원 모형. 1 3금당 배치 구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탑중심 구도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참고자료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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