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쉬교육과 잉글리쉬 마인드
달라이라마는 다음과 같은 웅변으로 자신의 지식에 대한 논지를 매듭지었다
“나는 달라이라마라는 제도에 의하여 어려서 발탁이 되었고 그래서 고독한 유년기ㆍ청년기를 포탈라궁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티벹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로서 공식적으로 즉위하여 포탈라궁의 사자좌에 앉은 것이 1940년 겨울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때 나의 나이가 만 5세였습니다. 나는 그때 취임식에 대한 기억조차 별로 없습니다. 보석장식이 달려있고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던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바깥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시계를 분해했다 조립했다 하는 기계조작의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취미를 통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러한 작은 기계들이 법칙적으로 운행되도록 고안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지식의 체계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나는 지식에 대한 갈망 속에서 나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나는 종교적 지도자들보다는 계발적인 과학자들을 만나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바람이라는 현상에 대하여 신화적 인식을 가지고 공포스럽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기압의 차이에 의한 기류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너무도 많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되고 또 바람이라는 현상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성을 통하여 이렇게 과학적 지식을 개발한 이유는 바로 인간의 삶을 인과가 파괴되는 신화적 세계로부터 벗어나게 만들며, 인간이 보다 합리적으로, 즉 합다르마적으로 살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적 지식이 또 다시 인류를 위협하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악업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해서 지식 그 자체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폄하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곧 지혜라는 신념은 나의 체험적 소산이며, 그러한 생각에는 동요의 여지가 없습니다.”
▲ 유년시절의 달라이라마 『유배된 자유』에서.
우리는 학교에 간다. 지식을 습득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식은 지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서울대학 입시 준비의 수단일 뿐이며, 좋은 회사 취직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 고귀한 지식들을 삶의 지혜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병폐를 생각하면 달라이라마의 체험적 호소는 얼마나 우리가 개화기의 지식에 대한 소박한 갈망으로부터 소외되었고, 타락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깊게 반성케 한다. 우리는 지혜롭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을 통하여 지혜에 도달한 위대한 지성인들의 모습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의 큰 병일 것이다.
“티벹의 승려들은 근대적 교육을 충분히 받고 있습니까?”
“도올선생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얼마나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티벹인민들의 교육과정은 상당히 근대화되어 있고 또 영어를 필수로 삼고 있습니다. 나는 네루의 도움을 잊지를 못합니다. 네루는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우리 티벹의 입장에서 본다면 섭섭한 결정도 많이 내렸지마는, 그는 우리 망명정부가 인도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민족의 교육이 구원한 장래를 위하여 가장 우선적 문제라고 하면서 교육을 위한 기본설비를 지원해주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생각의 깊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티벹사람들이 이렇게 남의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인도라는 문명의 토양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계 어느 곳에서 인도와 같이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고 또 아주 본질적으로 관용의 품을 허락하는 곳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영어라는 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라는 언어매체를 통해서 표현된 인간의 생각과 그 생각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습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와 관련된 사고방식이나 습관, 기호까지도 같이 묻어 들어오게 됩니다. 즉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영어마인드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곧 영어마인드와 나의 전통적 마인드가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영어를 배우면서 이러한 갈등에 몹시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문제상황이 항상 나의 정신적 씨름판에 등장해 있었습니다. 진정한 잉글릿쉬마인드의 교육은 티벹마인드를 파괴시킬 수도 있고, 티벹 멘탈리티의 순수성을 교란시킬 수도 있으며, 또 그러한 지식의 업장에 인간이 희생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됩니다. 진정으로 그러한 교육을 통해서 고유한 티마인드를 지킬 줄 아는 자만이 미래의 리더들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티벹 학승들이 길 잃고 타락하는 사례들도 소개했다. 그리고 오만의 업장에 가리어 본연의 순수성을 잃는 사례도 없지 않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티벹의 미래는 인류사의 보편적 흐름에 참여하는 근대국가의 구축이며, 그러한 근대국가의 구축은 전적으로 근대적 교육에 의존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종교는 개인의 선택의 대상이지만 문화는 개인의 선택의 대상이 아닙니다. 티벹인민들이 어떠한 종교를 선택하든지간에 그것은 그들의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나 사적인 취향의 문제로 귀결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티벹인이 기독교도가 되어도 좋고 이슬람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자유를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뿌리깊은 불교문화가 전통과 관습으로서 배어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실존의 관계그물입니다. 나는 우리민족이 아무리 근대화되고 도올선생께서 말씀하신 대로 잉글릿쉬마인드의 포격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불교문화는 계속 이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 취침 전에 경전을 암송하는 꼬마 스님들, 자려다가 내가 들어가 사진 좀 찍자하니까 구찮아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열심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명랑하기 그지없었다. 보드가야에서.
인용
'고전 > 불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부록 12.1. 석굴암 본존의 자태 (0) | 2022.03.20 |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인도야말로 세계의 중심 (0) | 2022.03.20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지혜와 지식 (0) | 2022.03.20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불교와 정신적 패러다임 (0) | 2022.03.20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불교는 과학이다 (0) | 2022.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