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정신적 패러다임
나는 물었다.
“불교는 무신론(atheism)이라는 저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물론이지요! 유신론의 전제는 반드시 이 세계에 대하여 이 세계 밖에 있는 창조주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도 인간 밖에 구세주(Savior)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불교는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구세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우주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자로서의 신의 개념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는 불교는 분명한 무신론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진정한 과학의 힘을 믿는 모든 상식인들은 그 상식의 논리에 철저하기만 한다면 모두 무신론자(atheist)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의 종교인들은 무신론하면 아주 나쁜 말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무신론은 모든 진정한 합리성의 기초이며 근대적 삶의 기본요건입니다. 무신론자가 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에게는 무신론의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신론 그 자체가 하나의 심오한 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과학이라는 인과 세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spirituality)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에 제는 21세기 인류사의 정신적 패러다임 쉬프트가 불교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댓스 라이트’(That's right.)라는 말에 환희에 가까운 액센트를 주면서 나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보충설명을 했다.
“불교는 창조주도 구세주도 초월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상(meditation)이라고 하는 종교적 수행방법을 제시하며, 고통으로부터의 해탈(解脫, mokṣa)이라고 하는 구원(salvation)의 윤리를 제시하며, 내세(next life)라고 하는 윤회의 이론을 제시합니다. 불교는 신이 없이도 인간에게 무한한 영성(spirituality)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는 엄연한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성립 요건에 유신론이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될 중요한 문제를 발견합니다. 서양인들이 불교에 귀의한다고 해서 불교라는 종교적 제도(institutional religion)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단지 영성(spirituality)의 개발이나 제고를 위하여 불교를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불교가 무신론이고 또 서양적 의미에서 종교가 아닌 이상, 종교적 교리에 대한 깊은 생각이 없이도 명상이나 마음의 수련을 위해 불교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에반젤리즘의 논의 속에서 이미 충분히 토론한 것이지만, 불교는 결코 자신의 특별한 제도를 타인이나 타문화에 강요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용자 자신의 풍토나 습관이나 성향이나 기질에 맞추어 변용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교는 티벹에서는 티벹불교가 되었고, 중국에서는 중국불교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일본불교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한국불교가 되었습니다. 로마교황청과도 같은 중앙통제력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경까지도 자유롭게 변용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저는 티벹불교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이 없습니다. 미국에 가면 그것은 미국인들의 기질과 습관과 실제적 요구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식적인 측면에서 일양(一樣)적인 기준을 고집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미국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한 새로운 승가의 발전을 장려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적 교리는, 아무리 우리가 해석의 자유를 허용한다 할지라도, 결코 훼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다르마며 진리입니다. 그리고 일단 불교에 심취한 사람은 아무리 그가 타신앙체계를 보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합적인 믿음체계(integral system)를 구축해 나가리라고 믿습니다.”
▲ 소치는 아이. 인도의 매력은 바로 우리주변에서 사라져 버린 이런 광경의 정취 때문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빈다. 제백석의 그림과도 같은 한 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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