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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 청소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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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 청소부

건방진방랑자 2022. 3. 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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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위하여

 

 

첫째로 그는 맑스주의 역사유물론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합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이라는 이분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1940~50년대 소련의 문화 전반에 대한 즈다노프(A. Zhdanov)의 독재와 과학 전반에 대한 리센코(T. D. Lysenko)의 독재는 한마디로 부르주아 진영과 프롤레타리아 진영이란 두 개의 진영이 문화나 과학에도 존재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리센코의 주도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생물체의 형질은 닮는다는 이론이 소련 생물학계를 지배하자,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구성된 프롤레타리아적 생물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즈다노프의 권력을 통해, 아니 궁극적으로는 스탈린의 권력을 통해, 유전을 주장한 멘델학파를 부르주아 생물학자로 몰아 축출하고 숙청합니다.

 

이는 물론 나중에 멘델의 유전학이 확고하게 확립되면서 아주 우스운 코미디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입은 상처는 매우 컸습니다.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트의 양분법으로 난도질당한 과학자들은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상실합니다. 이런 사정은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모든 나라의 공산당 주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알튀세르는 과학을 두 개의 진영으로 분할하는 리센코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인 오늘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은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 하며, 이 점에선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지요. 맑스주의 이론이 과학이라면 그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에 걸맞기 때문이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 수학 등이 그렇듯이 자신의 고유한 대상을 갖는, 여타 과학과 다름없는 과학(science among others)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과학에 대한 이처럼 강렬한 문제의식은 또 다른 한편에선 아마도 레비-스트로스의 역사주의 비판에 영향받은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주의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일 수 없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비판에는 과학을 향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지요. 알튀세르 역시 이런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그리고 맑스주의에서도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던 역사주의를 비판합니다. 사르트르는 물론 루카치나 그람시 등은 맑스주의 내부에서 그가 비판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역사주의자들이었지요.

 

더불어 인간의 개념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면서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정의하려 했던 레비-스트로스나 라캉의 테제 역시 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알튀세르 자신이 스스로의 입장을 요약하면서 가장 높이 들었던 깃발이 바로 이론적 반인간주의였으니 말입니다. 이는 맑스주의 내부에서 형성된 이론적 정세와도 긴밀하게 관련된 것인데, 사르트르나 루카치 등은 물론 청년 맑스의 저작(특히 경제학-철학 초고)에 기초해서 제창된 사회주의적 인간주의가 그것이었습니다. 이는 서구는 물론 동구의 맑스주의 철학계를 주도하는 흐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보기에 이는 모두 엄격한 과학적 객관성을 갖춘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적 목적하에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비과학)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맑스가 새로이 기반을 마련한 역사유물론은 엄격한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반영하는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유물론을, 즉 맑스주의를 명실상부한 과학의 이름에 값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데올로기들과의 단절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는 역사주의ㆍ인간주의로부터 역사유물론을 떼어내는 것이며, 인간이라는 범주로부터 계급이란 범주를 떼어내는 것이고, 결국은 이데올로기란 허위로부터 과학이란 진리를 떼어내는 것입니다.

 

 

 

 

맑스를 위하여

 

 

이런 관점에서 알튀세르는 맑스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제창합니다. 물론 맑스주의자들은 누구나 맑스에 의거하고 있으니 상당히 의아한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여기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맑스는 성숙한 시기의 맑스요, 자본이란 책으로 집약된 맑스입니다.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절정에 이른 청년 맑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손 안에 있는 맑스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맑스란 겁니다. 과학자 맑스,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는 1845독일 이데올로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단절이후의 맑스와 맑스주의입니다.

 

이를 위해서 알튀세르는 그의 스승이었던 과학철학자 바슐라르(G. Bachelard)인식론적 단절이란 개념을 빌려옵니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과학자도 이전에 있었던 개념을 가지고 사고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이룩하려면 이 이데올로기적 개념과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누구나 초기에는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과 개념 속에서 사고하며, 이것과 인식론적 단절을 이룸으로써 과학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맑스의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된다고 봅니다. ‘인간’ ‘소외란 범주를 토대로 하는 인간학적 문제설정과 단절하여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선언함으로써, ‘인간이라는 환상적 대상과 단절하여 생산양식이라는 대상을 정립함으로써, 맑스의 역사유물론은 역사과학이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알튀세르는 헤겔적인 총체성 개념의 비판이 맑스주의의 중요한 성과라고 합니다. 헤겔에게 전체(총체)모순이라고 하는 하나의 본질이 표현된 것(표현적 총체성)인데, 사실 역사과학이 다루는 역사적 사정과 정세는 이처럼 하나의 (근본) 모순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자본/노동 사이의 모순으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그는 헤겔주의적이라고 봅니다. 러시아 혁명을 예로 들면, 자본과 노동의 모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 간의 모순, 국내 지배세력과 다양한 피지배계급들의 모순 등 다수의 모순들이 중층적으로 혁명적 정세를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이를 그는 중층적 결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맑스주의 이론이 과학이 되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알튀세르는 이전에는 유물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던 반영론으로부터 거리를 둡니다. 반영론이란 알다시피 개념이나 이론은 실재의 반영이요, 모사라고 보는 입장인데, 실재-이론이란 짝을 설정하고, 경험적인 검증에 의해 이 양자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험주의 /실증주의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는 바로 알튀세르가 설정해 둔 또 하나의 중요한 타격대상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무의식이나 잉여가치는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또한 실증주의자들 말대로 검증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조차 경험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도록 저항한다고 하지요. 잉여가치나 착취 역시 많이 당한 사람이 잘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임금이 노동의 대가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잉여가치나 착취는 경험만으로는 결코 인식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곤란까지 지적하면서 자본주의와 착취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혀놓은 게 바로 맑스의 업적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맑스의 이론을 과학으로 정립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알튀세르는 여기서 필요한 게 바로 맑스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알튀세르에게 철학이란 대문자로 쓰는 이론’(Theory)인데, 이는 이론에 대한 이론’(이론의 이론)입니다. 즉 어떤 이론이 과학인가 아닌가, 내부적으로 올바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활동이 철학이란 겁니다(이는 철학에 대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정의와 거의 유사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진리의 보증자’ ‘과학의 보증자인 셈이지요.

 

그럼 철학은 무엇으로 보증해 줄까요? ‘검증을 통해 실재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실증주의의 발상이 여기서 비판됩니다. 수학적 추론의 결과가 현실과 일치하는가 아닌가는 수학적 지식의 진리성을 판단하는 데 하등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실에서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을 그릴 수 있든 말든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자체로 과학이란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현실대상과 지식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여기서 인용합니다. ‘란 개념은 현실대상인 개와 어차피 다른 것이기에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비교해서 진리 여부를 가릴 순 없다는 것이죠. 즉 지식대상과 현실대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따라서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지식대상인 개념들 간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됩니다. ‘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다른 개념들 간에 일관성이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튀세르는 지식효과라고 합니다. 지식으로 구성하며 지식으로서 작용하게 하는 효과란 뜻이지요.

 

 

 

 

이데올로기와 표상체계

 

 

둘째로,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정립하려는 기획과 동시에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발전을 기획합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무의식적 표상체계로서 정의하는 것입니다.

 

표상representation을 번역한 말인데, 알다시피 represent표상하다는 뜻말고도 재현하다’ ‘대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상한다는 말은 눈앞에 떠올린다는 뜻인데, 예컨대 자동차란 말을 듣고 그에 상응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나, 역으로 어떤 물체를 보고 컴퓨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는 단어를 통해 사물을 눈앞에 재현하거나, 사물을 보고 그에 상응하는 단어를 머릿속에 재현하는 것이지요.

 

그럼 표상체계란 무엇일까요? 예컨대 이 물건을 보고 이라고 판단함으로써 우리는 이 물건에 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못 먹을 것이란 개념만으로 판단하는 어린 아기라면 그걸 입으로 가져가겠지요. 또 제가 지금 이렇게 강의하는 것은 여러분에 대해 제가 강사라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않는다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한편 어떤 행동을 하거나 판단을 하는 것은 언제나 특정한 표상과 함께 진행됩니다. 일관된 표상이 없으면 일관된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제가 지금 이 자리를 연극무대라고 떠올린다면, 또 잠시 후에 선거연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행동은 어떤 일관성도 동일성도 갖지 못한 채 뒤죽박죽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떠올리도록 해주는 개념이나 상상, 판단의 체계를 표상체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표상체계는 개인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개 집단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지거나, 학교나 교회 등 제도적 장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식당에서 흑인을 보고 등을 돌리는 남부의 미국인이나, 십자가를 보면 자세를 가다듬는 기독교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남부의 미국인라면 대개 다 그럴 거고, 기독교도라면 대개 다 그럴 거란 것을 알 수 있지요.

 

또한 이런 표상체계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예컨대 방 청소를 한다고 합시다. 바닥에 있는 책을 보고 이건 책이고, 책은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하니 이건 책장에 꽂아두자하진 않을 겁니다. 미시시피 버닝이란 영화에는 어린 꼬마들도 흑인은 하찮은 존재고 경멸받아 마땅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게 나옵니다. 이건 그 아이들이 사고하고 의식해서 하는 판단이 아닙니다. 의식은 이 표상체계 안에서 일어나며 표상이 의식에 선행합니다. 표상체계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인 표상체계라고 이해합니다.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대중은 나는 한국인이야 나는 대학생이지’ ‘나는 김씨 가문의 아들이지따라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받았으니 그만큼 일을 해주는 건 당연해라는 판단도 그렇습니다.

 

맑스주의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의 이념으로, 따라서 그것은 피지배계급에겐 허위의식이요 거짓이고, 지배계급이 없어지면 사라질 것으로 보았지요. 또한 그것은 의식적인 것으로서, 계급의식의 일종으로서 파악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본 것처럼 알튀세르는 이것이 무의식적인 것임을 주장하며, 또 그것 없이는 이 사회에서 내가 선 자리는 무엇이고, 거기서 무얼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사회(심지어 공산주의사회)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없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없는 무의식 개념을 프로이트에게서,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라캉에게서 끌어옵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표상체계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져 가는가를 분석합니다. 라캉이 무의식(타자)을 통해서 어떻게 개개인이 주체로 되어 가는지를 분석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요컨대 이데올로기 없는 주체는 없으며, 이데올로기 없는 실천도 없다는 것입니다. 표상체계로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대한 상상적인 체험이기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변형시키고 왜곡시켜 보여주지요. 이래서 알튀세르는 현실은 결코 투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만약 그의 말처럼 이데올로기가 영원한 거라면 이러한 변형과 왜곡 역시 영원하단 말이겠지요?

 

바로 여기서 알튀세르의 이중적 기획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앞서 첫 번째 기획은 맑스의 역사유물론과학으로서, 진리로서 위치를 확고히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와의 단절을 거치면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하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지요. 반면 지금 말한 이데올로기론의 기획에서 나온 결론은 어떤 대상도 결코 투명하지 않으며, 오직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죠. 따라서 어떤 순수한 과학도 불가능하며, 과학 자체가 바로 이데올로기 속에 있거나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즉 두 가지의 동시적 기획이 서로 충돌함에 따라 알튀세르의 배는 난파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변명

 

 

알튀세르의 기획이 갖고 있는 이러한 모순적 요소 가운데 결국 그가 선택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애초에 그의 기획 가운데 중심의 자리에 있던 것은 전자, 즉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1968년의 5월 혁명을 거치면서 그는 중심을 이데올로기론으로 옮기며, 전자에 기울었던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자기비판을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이 진리 허위에 대한 이성주의적 이분법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즉 과학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진리요, 이데올로기는 그렇지 못하기에 거짓이요 허위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정의하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테제를 비판했으나,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자체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실재요 현실이라고 생각했으나, 진리 허위의 이분법과 과학주의적 기획으로 인해 다시 이데올로기 = 허위라는 이성주의적 도식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는 진리라는 보증자를 구하는 인식론 자체가, 공정한 심판자를 구하려는 법적인 관념에 머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적 기획이라고 비판합니다. 과학은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과학, 당파적 과학일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테제 역시 이러한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이 철학을 어떤 지식이 진리임을 보증해 주는 이론’ (Theory)으로, 진리의 보증자로 정의함으로써 실증주의적 입장에 머물렀다고 합니다(이와 관련해서 철학에 대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정의와 유사함을 우리는 앞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가공해서 과학적 개념으로 바꾸는 이론적 실천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론주의적 편향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제 그는 철학에 대해 새로이 정의하려 합니다. 그것은 철학은 정치에서 이론을 대변하고 이론에서 정치를 대변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철학은 최종심급에서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는 것입니다. 이후 계급투쟁이 그의 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비판은 사실 과학주의의 기각과 동시에 과학이 차지하고 있던 중심적인 자리를 이데올로기에게 넘겨줌을 의미합니다. 이런 뜻에서 알튀세르의 이러한 전환을 과학에서 이데올로기로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론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이제 그는 재생산이란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고찰합니다.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포섭된 하나의 생산수단, 착취당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기존 체제에 적 응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노동력으로 재생산됩니다.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 동안의 세월조차 유지되지 못했겠죠. 즉 재생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재생산의 문제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어떤 개인도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주체로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이것이 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의 효과 속에서, 즉 기존의 사회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질서의 체계 속에서 개인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원래 subject라는 말에는 주체라는 뜻과 신하’ ‘종속이라는 뜻이 동시에 있음을 주목합시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기존 질서가 요구하는 신하주체화되기 때문에, 사회의 질서는 계급대립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중요 명제들

 

 

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중요한 명제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이데올로기 이것은 이데올로기 일반을 뜻합니다 는 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는 뜻으로, 어떤 사회에도 이데올로기는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에 비유합니다. 물론 개개의 이데올로기들이야 역사를 갖겠지만 말입니다.

 

둘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적 존재 조건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즉 이데올로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현실관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럴 것이다라고 당연시되어 있는 방향으로 변형된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란 뜻에서 이러한 비현실적관계를 마치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관계로 상상하고 오인(méconnaissance)토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유럽에서 실업문제가 심각해지자, 취업문이 좁아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그렇게 된 게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싼값에 풍부하게 구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끌어들였고, 경기가 나빠지자 고용을 줄여서 그런 것이지요. 그러나 노동자들은 개인으로서 자본가와 계약하기 때문에 자신이 고용되지 못하는 것을 마치 다른 노동자, 특히 외국에서 이주한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오인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고용되고 개인적으로 해고되는 걸 당연시하는 표상체계에 의해 상상된 관계요, 거기서 정해놓은 허구적 관계를 인정(reconnaissance)하는 오인입니다.

 

셋째,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효과를 갖는 물질적 존재며, 물질적 장치를 통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장치를 통해 제도화된 특정한 방식의 실천을 통해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합니다. 종교적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믿음이나 관념이 아니라, 매주 교회에 나가고,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 작동하는 물질적 존재라는 겁니다. 이처럼 특정한 실천들을 지속화하는 장치를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고 합니다. 학교나 교회, 가족 등등이 그것입니다.

 

넷째, “이데올로기는 항상-이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매우 핵심적인 주장인데, 예컨대 너는 신의 어린 양이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다또는 너는 한국인이다” “너는 백인이다와 같이 너는 누구라고 불러주는 것이 호명(interpellation)입니다. 그 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너는 (한국인이니) 이걸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장면이 매우 많지요? 신의 부름을 받은 모세나 다른 선지자들이 그 부름에 따라 무언가를 합니다. 즉 신이라는 호명한 주체(이를 큰 주체Subject라고 합니다)에 복속되어 그가 지시하는 바를 따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건 신의 백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여기서 항상-이미라는 말을 쓴 것은, 예컨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는 누구의 아들이고 한국인이고 황색인종이라는 등의 호명이 항상-이미 정해진 채 기다리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즉 내가 불리어질 호칭은 항상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지요. 그에 대해 내가 하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큰 주체(예컨대 한국인’)의 부름을 내 것으로(“나는 한국인이야”) 하게 됩니다. 이로써 나는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게 말 잘 듣는 주체든, 말썽 피우는 주체는 혹은 삐딱한 주체든 간에 말입니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s   other
 
   
me S(Sujet)

 

 

여기서 S(큰주체)에서 me로 이어지는 선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항상-이미 존재하는 호명, 즉 내게 주어질 나의 자리요, 내가 호명에 답해 채워야 할 질서 속의 빈자리입니다. 그리고 S의 호명에 답함으로써 나는 s(주체/신하)로 되고, 그것이 부르는 내 이름(예컨대 한국인’)을 내 안에 옮겨 놓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내 안의 주체지요. 라캉이 말하는 에스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주체의 부름에 답하는 다양한 방법, 형태가 other입니다. ‘조국의 부름을 받은용감한 군인이 되기도 했다가,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해 빠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근면한 근로자가 되지만 종종 힘든 삶에 찌들어 술을 따르는 편한직업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로써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이 항상-이미 주체로 구성되어 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상-이미 호명된 주체로 개개인이 주체화되어 가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메커니즘 자체가, 타자에 의해 개개인이 주체로 되어가는 라캉의 메커니즘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캉에게 생기는 난점들 역시 마찬가지로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알튀세르 철학의 모순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기능주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의 이론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가 개개인을 호명함으로써 항상 이미 존재하는 기존 질서 속에 포섭하고, 거기서 요구되는 역할을 자신의 일로 인정’ ‘오인하고 수행한다는 결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개념은 기존의 지배적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고 기능하는가 하는 메커니즘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며, 이 질서의 변화와 전복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반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는 아마도 이데올로기를 재생산이란 관점에서 정의하고 개념화하려는 문제설정에서 근본적으로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즉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며, 그 속에서 개인들을 주체로서 재생산하는가를 설명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가 이런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계급투쟁입니다.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존립하고 작동하는 게 아니라 계급투쟁을 통해 변화되고 그것을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테제를 제시합니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대중에 대한 계급투쟁이며, 대중의 투쟁을 포섭하여 수용가능한 것으로 전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가진 이데올로기 역시 계급투쟁을 통해 가변화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난점을 야기하게 됩니다. 다 접어두고 근본적인 것만을 본다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없이는 어떠한 실천도 불가능합니다. 그건 표상체계 없는 판단, 무의식 없는 의식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이데올로기 없이는 어떠한 계급투쟁(실천!)도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외부에 있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이 추가한 테제는 이 계급투쟁이 이데올로기의 성립과 변화를 설명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면 이데올로기는 계급투쟁에 의해, 그리고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외부는 없으며 이데올로기 없는 실천은 없다, 라캉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으로선 결코 잘라낼 수 없는 테제와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는 맑스주의의 테제가 서로 근본적인 모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커다란 주제와 관련해 요약하면, 알튀세르는 근대적인 주체 철학과 인간주의에 대해 명시적인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근대적인 출발점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거꾸로 주체나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효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란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명제를 이데올로기 개념의 발전을 통해 개개인이 주체화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다른 한편 알튀세르는 초기의 과학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통해 과학주의라는 근대적 정당화주의를 벗어납니다. 그는 심지어 인식론이란 분과 자체가 부르주아적이고 법적인 정당화주의임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통해 진리/허위의 근대적 이분법을 깨뜨립니다. 이로써 어떤 지식이나 관념들을 하나의 현실적 실재로 간주하고 그 효과를 사고하는 이론적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를 과학으로서 추구하려는 태도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 당파적 과학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도입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결국 이러한 알튀세르의 시도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통해 근대적 문제설정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재생산을 넘어 항상 이미 존재하는 체계의 전복을 사고하기 곤란하다는 난점에 부닥칩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 난점을 계급투쟁이란 개념을 통해 극복하려고 합니다. 마치 맑스가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근대적 문제설정을 넘어서려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딛고 있는 라캉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은 계급투쟁 개념과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모순적 요소였기에, 이러한 극복의 시도는 해결하기 힘든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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